정희진의 책읽기
「프로페셔널의 조건」피터 드러커
미래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며, 경영학부터 소설까지 35권이 넘는 책을 썼으나 '내 생애 가장 훌륭한 책은 다음에 나올 것'이라는 피터 드러커.
그의 <프로페셔널의 조건>(이재규 옮김, 청림출판 2001)은 실용적이면서도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나는 소위 처세, 자기 계발로 분류되는 인간 관계 이론서를 즐겨 읽는 편이다. 옴짝달싹 할 수 없이 권력 관계로 격자 쳐진 현대 자본주의 사회 조직 내부에서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면적인, 때론 처절한 적응 전략을 엿볼 수 있어서다.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대 담론적 시각에서는 이런 책들이 신발에 발을 맞추는, 즉 구조의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기는 '개량적' 작업일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의 생산성과 개인의 욕망을 둘러싼 권력학 갈등은 애인 관계, 회사, 노동조합, 사회단체, 학교 등 사람이 둘 이상 모이면 어디에서든 예외가 아니다. 어느 조직이나 지도자를 지배자로 착각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어서 사람들은 비슷한 문제로 고통받는다. 이에 대한 드러커의 조언은 기존 패러다임을 버려야만 적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철학적이다.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위해 혁신하라, 능력은 습관의 집합이다, 의사 소통은 조직 유지 수단이 아니라 존재 양식이다, 우선순위 결정 요소는 분석이 아니라 용기다."
이미 사회는 가치 판단의 여유를 주지 않고 지식 정보화 시대로 치닫고 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독자가 아니라 사용자이며 지식은 존재에 관한 물음이 아니라 행위에 관한 질문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드러커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 개인의 힘에 주목한다. 정보화는 지식의 개념과 노동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지식 경제 시대는 지식인에게 '사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식의 권위를 해체하고 모든 노동자가 자기 노동의 전문 지식인이 될 것을 요구한다. 지식은 직업의 조건일 뿐, 그 자체로 서열을 매길 수 없으며 공동체에 공헌하는 바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정보화, 지구화가 사회적 약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대단히 논쟁적이지만, 우리는 틈새 전략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식 노동자는 과거의 어떤 노동자와도 다르다. 이제 생산수단은 '기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식 노동자는 생산수단을 자기 몸에 휴대한다. 몸 자체가 생산수단인 것이다. 지식 노동자는 '물건'이 아니라 정보와 개념, 아이디어를 생산하며 어떤 고용 기관보다도 오래 산다. 그러므로 여성이나 노인, 장애인도 전문 지식만 있다면 누구나 평생 노동자가 될 수 있다. 사실 이 책만큼 연령주의에 강력하게, 논리적으로 도전하는 책도 드물 것이다. 어떻게 과거의 노예가 되지 않고 나이를 먹을 것인가 저자 스스로 그것을 실현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는 은퇴할 욕심이 없는 95살의 현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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