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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정희진

[시]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by eunic 2005. 2. 25.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제 생일이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지난밤 처음으로 말다툼을 했지요.
그리고 그는 잔인한 말들을 많이 해서 제 가슴을 아주 아프게 했어요.
그가 미안해 하는 것도, 말한 것을 그대로 뜻하지 않는다는 것도 전 알아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우리의 결혼기념일이라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요
지난 밤 그는 저를 밀어붙이고 제 목을 조르기 시작했어요
마치 악몽 같았어요. 정말이라고 믿을 수 없었지요
온몸이 아프고 멍투성이가 되어 아침에 깼어요
그가 틀림없이 미안해할 거예요
왜냐하면 저에게 오늘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그런데 어머니 날이라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지난 밤 그는 저를 또 두드려 팼지요 그런데 그전의 어떤 때보다 훨씬 더 심했어요
제가 그를 떠나면 저는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아이들을 돌보죠?
돈은 어떻게 하구요?
저는 그가 무서운데 떠나기도 두려워요.
그렇지만 그는 틀림없이 미안해 할 거예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어요. 바로 제 장례식날이었거든요
지난 밤 그는 드디어 저를 죽였지요.
저를 때려서 죽음에 이르게 했지요
제가 좀더 용기를 갖고 힘을 내서 그를 떠났더라면
저는 오늘 아마 꽃을 받지 않았을 거예요

 

피해여성이 피해여성에게 보내는 편지. 작자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