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 완전한 영혼
악을 모르기에 악에 맞설 수 있는
식물적 인간에 대한 근원적 그리움
죄의식 없는 권력, 의심 없는 사랑. 누구나 원하는 것이다. 불가능한 것을 알기에 더욱 간절히 원한다. 이런 점에서 체 게바라는 '비겁'했고 욕심이 많았다. 그는 현실 정치의 진흙탕을 뒹구느니, 죄의식 없는 권력을 영원히 갖길 바랐다. 그건 쉬운 것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혁명가는 체 게바라가 아니라 카스트로 형(型)이다. 사실 본격적인 혁명의 고단함과 지루함은 혁명 세력이 정권을 잡은 후부터 시작된다. 과거의 운동가들이 어느 순간 권력자가 되는데, 물론 권력자가 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당연히 권력자가 되어야 한다. 문제는 더 보수적인 권력자가 되는 경우다.
변혁의 꿈을 포기한 사람들의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사회 운동 내부에도 불평등, 시기심, 비합리적인 권력 추구, 성폭력, 성격 장애자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아름다움과 추함, 매력, 성과 사랑, 가족에 대한 가치관은 변화시키려는 세계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이 골치 아픈 주제는 사회 변화가 단지 억압자와 피억압자, 주체와 대상의 자리바꿈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그 방법과 과정에 대한 상상력을 차단당한 많은 사람들의 고뇌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해답이라기보다는, 답을 찾으려는 정신을 나는 작가 정찬에게서 본다. 그의 두번째 소설집 <완전한 영혼>(문학과지성사. 1992)은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공공도서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오독을 겸해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1990년대 초 사회주의권 '몰락'으로 충격 받은 어느 운동가의 방황기다. 실제로 당시 일부 학생운동가들은 대안 모색의 차원에서 이 소설을 세미나 교재로 삼기도 했다.
나는 가끔 친구들과 이 작품뿐만 아니라 <슬픔의 노래>, <얼음의 집> 등 그의 소설에 대한 열광적인 독후감을 반복하면서 행복해하곤 한다. 최근에서야 이 작가에게 몰두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정치적 올바름을 이유로 일상의 비루함을 거역하기 힘들어지고, 타협과 굴욕의 경계가 어디인지 헤매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읽는 사람마저 데일 것 같은 그의 숨막힐 듯 내연(內燃)하는 치열한 언어는 내 삶의 정치적 환풍구가 된다. 또다른 이유는 홍정선의 말대로 정찬이 추구하는 새로운 인간-식물적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그리움 때문인 것 같다.
어떠한 유토피아도 영성에 대한 희구 없이는, 인간의 선함에 대한 간절함 없이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세상 '안'에 살면서 세상 '안'을 변화시키려는 어려운 임무를 자처한 사람들의 순수한 열정. 그러나 그 순수함과 자기 희생에 비례하기 쉬운 독선과 자기 분열, 좌절…. 이에 대한 작가의 고민은 '식물적 인간'으로부터 출발한다. 식물적 인간은 완벽한 무사상적 인간으로 기존의 권력구도 밖에 존재한다. 악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악에 대항할 수 있으며, 어떤 사상도 없기에 사상으로 무장한 운동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 '완전한 영혼'을 가진 식물적 인간은 의식이 아니라 삶의 스타일로 진보를 증거한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 한겨레에 기고한 글
최근 한국방송<인물현대사>에서 이근안을 다루었죠.
그때 고문당한 한 사람이 그러죠.
"그들도 인간이었다. 그냥 보통 사람이었다. 우리를 고문하면서 그들은 딸 이야기, 점심 뭘 먹을거냐는 얘기를 나누었다. "
고문당한 그 사람은 "그들이 가진 비인간성을 탓하기 보다는 그들이 단지 세상 많은 직업들중의 국가공무원으로서의 고문이라는 자신의 직분을 충실히 수행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고문은 아무 생각없이 할 수 없었고 무언가 행위자의 마음속에 도피처같은 논리를 하나쯤은 가지지 않고 있어야 미치지 않고 그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거죠.
그는 심지어 그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들(고문기술자, 국정원)은 스스로 나라를 위해 '애국'한다는 자부심이란 것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죠.
정찬 씨 소설중에 고문기술자와 고문 당하는 자의 논리 대결이 주제인 것이 있는데 그 소설이 참 인상적이어서 정찬씨 소설이 나오면 꼭 읽어봅니다.
그의 소설은 철학책 같아요.
정희진 씨 말대로 공공도서관에서 찾을 수있는 책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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