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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사랑의 단상 中, 부재자

by eunic 2005. 2. 24.

사랑의 단상 中, 부재자

absence 부재, 사랑의 대상의 부재를 무대에 올리는 언어의
에피소드는 모두 그 부재의 이유나 기간이 어떠하든 부재를
버려짐의 시련으로 변형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1. 사랑의 부재에 대한 수많은 가곡과 멜로디. 노래들이 있다.
그러나 이 고전적인 문형을 베르테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 작품에서 사랑의 대상인 로테는 움직이지않
는다. 어느순간 멀어지는 것은 바로 사랑의 주체인 베르테르이다
그런데 부재에는 항상 그 사람의 부재만이 존재한다 떠나는 것은
그 사람이고 남아있는것은 나 자신이다 그 사람은 끊임없는 출발
여행의 상태에 있다. 그의 천직은 철새, 사라지는 자이다.그런데
사랑하고 있는 나, 나의 천직은 반대로 칩거자, 그 사람의 처분
만을 기다리며 자리에서 꼼짝않고 미결 상태로 앉아 있는, 마치
역 한구석에 내팽개쳐진 수화물마냥 아무도 찾으러오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사랑의 부재는 일반통행이다. 그것은 남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상 현존하는 나는
끊임없이 부재하는 너 앞에서만 성립된다. 그러므로 부재를
말한다는 것은 곧 주체의 자리와 그 사람의 자리가 교환될 수
없음을 단번에 상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2. 역사적으로 부재의 담론은 여자가 담당해왔다.여자는 칩거자,
남자는 사냥꾼.나그네이다. 여자는 충실하며(그녀는 기다린다),
남자는 나돌아다닌다.(항해를 하거나 바람을 피운다) 여자는
시간이 있기에 물레를 짓고 노래를 부른다. 그러므로 부재에
형태를 주고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은 여자이다. 실을 짜는 여인,
베틀의 노래 등은 동시에 부동과(물레의 웅웅거림에 의해)
부재를(멀리서 들리는 여행의 리듬, 겹쳐지는 파도소리) 말한다.
따라서 그 사람의 부재를 말하는 남자에게는 모두 여성적인것이
있음을 표명하는 결과가 된다. 기다리고 있고 또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 남자는 놀랍게도 여성화되어 있다. 성도착자여서가
아니라 사랑하기때문에 여성적인 것이다.(신화나 유토피아
- 그 기원도 미래도 여성적인 주체에 속해왔고 또 속할 것이다)


3. 가끔 부재를 잘 견디어낼 때가 있다.그러면 나는 '정상적인'
사람이 된다. '소중한 이'의 떠남을 감수하는 '모든 사람'의
대열에 끼게 되는 것이다. 일찍부터 어머니와 떨어져 있도록
훈련된 그길들이기에 나는 능숙하게 복종한다.그러나 처음에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던(거의 미칠지경이었던) 그 길들이기에.
나는 젖을 잘 뗀 주체처럼 행동한다. 어머니의 젖가슴이 아닌
다른 것으로 그 동안 양분을 취할 줄도 안다. 이 잘 견디어낸
부재, 그것은 망각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간헐적
으로 불충실한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이기
도 하다. 망각하지 않는다면 죽을 것이기에. 가끔 망각하지않는
연인은 지나침, 피로, 추억의 긴장으로 죽어간다.(베르테르처럼)

(어렸을 때를 난 잊어버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멀리 일하러 간
그 기나긴 버려진 나날들을. 저녁마다 어머니를 마중하러
세브르-바빌론 버스 정류장에 나가곤 했다. 버스는 여러 대
지나갔지만 그 어느 것에도 어머니는 없었다.)


4. 이 망각으로부터 나는 아주빨리 깨어난다.그리고는 서둘러서
어떤 기억을, 혼란을 재구성해본다. 하나의 (고전적인) 단어가
육체로부터 우러나와 부재의 감동을 말해준다. 즉 '갈망하다'란
단어가. 그런데 '갈망하다'란 '육체의 현존을 갈망하는'것을
뜻한다. 남녀양성겸유자의 두 반쪽은 서로를 갈망한다. 입김을
불 때마다 그 불완전한 입김이 서로 상대방의 입김에 섞이기를
원하는 것처럼. 두 개의 이미지를 하나로 녹이는 것으로서의
포옹의 이미지. 그러나 사랑의 부재에서의 나는 서글프게도
누렇게 메마르고 오그라든, 떨어진 이미지이다.

(무엇이라고? 욕망이란 대상이 현존하든 부재하든 항상 동일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대상은 항상 부재하는 것이 아닐까? -
그러나 그것은 동일한 우수가 아니다. 그리스어에는 욕망에대한
두 단어가 있다. 부재하는 이에 대한 욕망에는 '포토스'가,
현존하는 이에 대한 욕망에는 보다 강렬한 '히메로스'가.)


5. 나는 부재하는 이에게 그의 부재에 관한 담론을 끝없이 늘어
놓는다. 이것은 요컨대 놀라운 상황이다. 그 사람은 지시물로는
부재하지만 대화상대로서는현존한다 이 이상한뒤틀림으로부터
일종의 감당하기 어려운 현재가 생겨난다. 나는 지시의 시간과
담화의 시간 사이에 처박혀 꼼짝못한다. 당신은 떠났고
(그 때문에 내가 괴로워하는), 또 당신은 여기 있다.
(내가 당신에게 말하고 있으므로) 그러면 나는 현재가,
이 어려운 시간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것은 고뇌의 순수한
한 편린이다. 부재는 지속되고, 나는 그것을 견디어내야만한다.
그래서 나는 부재를 조작하려 한다. 시간의 뒤틀림을 왔다갔다
하는 행동으로 변형시키거나 리듬을 산출하거나, 언어의 장면을
열고자 한다.(언어는 부재에서 태어난다. 아이는 실패를 가지고
장난한다. 어머니의 외출과 귀가를 흉내내며 실패를 던졌다 붙잡
았다 한다. 하나의 패러다임이 창출된 것이다.)
부재는 하나의 능동적인 실천, 분망함(다른일은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이 된다. 다양한 역할(의혹.비난.욕망.우울)이 등장하는
허구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런 언어의 연출은 그 사람을
죽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아이가 어머니의 부재를 여전히
믿고 있는 시간과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는 시간 사이에는 극히
짧은 차이밖에 없다고 한다. 부재를 조작하는것, 그것은 이
순간을 연장하려는, 그리하여 그 사람이 냉혹하게도 부재에서
죽음으로 기울어질지도 모르는 순간을 되도록 오래 늦추려는
것이다.

6. 욕구불만의 문형은 현존일 것이다.(나는 그 사람을 매일
보지만 충족되지 못한다. 대상은 실제 저기 있으나 상상속에서는
여전히 결핍되어 있다) 그리고 거세의 문형은 불연속성이리라.
(나는 '울지 않고' 그 사람을 잠시 떠나 있을 것을 승낙한다.
관계의 장례를 감수한다. 나는 망각할 줄 안다) 그런데 부재는
결핍의 문형이다. 나는 욕망하며 동시에 필요로한다. 욕망이
필요 위로 내려앉는다. 바로 거기에 사랑의 감정의 집요한
사실이 있다.

("영원하고도 열렬한 욕망이 저기 있다. 그러나 神은 욕망보다
더 높은 곳에 있고, 그리하여 욕망의 치켜진 팔은 저 숭앙받은
완전무결함에는 결코 이르지 못한다." 부재의 담론은 두 개의
표상문자로 씌어진 텍스트이다. 한쪽에는 욕망의 치켜진 팔이,
다른 한쪽에는 필요의 내민 팔이 있다. 나는 치켜진 팔의 음경의
이미지와 내민팔의 음문의 이미지사이에서 흔들거리며망설인다)


7. 나는 홀로 찻집에 앉아 있다. 누군가가 와서 인사한다.
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원해지며 영합의 대상이 된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부재하고, 그래서 나는 나를
노리고 있는 이 세속적인 영합으로부터 그가 나를 지켜주도록
마음속에서 그를 소환한다. 내가 빠져들어가는 듯한 이 유혹의
히스테리에 대항하기 위해 그의 '진실'(그는 내게 그런 느낌을
준다)에 호소한다. 내 세속적인 처신이 마치 그 사람의 부재탓인
양. 그의 보호를, 귀환을 간청한다. 어머니가 아이를 찾으러오는
것처럼,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나 이 세속적인 현란함으로부터,
사회적인 자만심으로부터 나를 구하여 사랑 세계의 "그 종교적인
내면성과 장중함을" 돌려주기를 간청한다.(X는 내게 사랑이 그를
세속적인 삶으로부터 보호해주었다고 말했다. 파벌.야심.진급.
음모.동맹.탈퇴.역할.권력으로부터.사랑은 그를 사회의 찌꺼기로
만들었지만 그는 오히려 그것을 기뻐했다고.)

8. 불교의 한 공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스승이 제자의 머리를
오랫동안 물 속에 붙잡고 있었다. 점차 물거품이 희박해지고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스승은 제자를 꺼내고 되살린다. 네가
지금 공기를 원했던 것처럼 진실을 원할때, 너는 비로소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리라." 그 사람의 부재는 내 머리를 물 속에
붙들고 있다. 점차 나는 숨이 막혀가고 공기는 희박해진다.
이 숨막힘에 의해 나는 내 '진실'을 재구성하고, 사랑의 다루기
힘든 것을 준비한다.

롤랑바르트, 사랑의 단상 中 L'abs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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