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동보다 말이 먼저다.
거기에다가 쐐기를 박는 말을 해서 참 문제다.
가령이를테면, '영원'과 '절대'를 종종 쓴다.
그중에 하나가 종교문제였다.
나에게 절대로,영원히 하지 않는 게 있다면 종교라고 말해왔다.
그말이 무색하게 나는 올해부터 교회에 나가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예수 탄생일인 작년 크리스마스때부터 나갔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여전했지만
예배시간을 일주일에 한번 갖는 것도 좋을듯 했다.
또한 국악찬송가를 부르기 때문에
해금, 가야금 소리를 매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난 아침마다 황병기가 가야금으로 연주한 캐논과 유키구라모토의 캐논과 유진박의 캐논 락버전을 듣는다.
교회에 나가서 들은 설교 한토막.
목사님은 부의 95%를 인구 5%가 차지하고 있는 정의롭지 않은 인도와 개인의 권리라든가 기본적인 생활보장 등이 보편화된 미국은 유일신과 다신으로 대표되는 나라라고 말했다.
정의롭지 못한 인도는 평화롭고, 미국은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실은 평화롭지 않은 나라라고 했다.
나는 이제까지 평화는 평등이 전제되야 오는 것이라고 믿었다.
무슨 일이든, 원칙이 있어야 하고, 순서와 도리를 따지면서, 그런게 아닌 것을 경험할 때마다 극심한 분노와 좌절감을 느꼈던 것 같다.
대학시절 4년동안 과외를 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고, 과외비를 받으면서
내 마음 한구석에는 과외에서받는 스트레스가 자리잡고 있었다.
가난해서 문제집도 신청못했던, 학원도 보내주지 않았던
내 부모가 생각났다. 과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내가 자라온 세계의
동떨어짐을 매일 매일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졸업을 하면서,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과 친구하는데
남들보다 재능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딜가든 좋은 것보다 잘못된 것 하나에 오만 정이 떨어져 버려
하루하루 불평 불만으로 살았다.
아프더라도 "왜 나만 이럴까?"라면서 병의 평등성에 대해서
되지도 않을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있었다.
이제는 눈이 아프면 내가 너무 인터넷을 많이 하니까 그렇지라고
마음을 편하게 먹는다.
평등이 곧 다가 아님을 되새기면서.(쉽진 않지만...) 살아가고 있다.
마음의 평화가 몸의 건강으로 질적변화를 일으킬 날을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정말 올해를 맞이한 기분을 느꼈다.
다이어리에 이렇게 썼다.
"올해는 귀가 얇은 사람이 되자"
올 한해는 정말 남이 한 말만 듣고, 남의 행동만 따라서 해보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보지 못한, 내가 경험하지 못한, 내가 배우지 못한 것들을 알고 싶다.
매일 고집부리고, 원리원칙 따지느라 한발짝도 사람들 세상에 못 들어선 것 같았다.
내 친구가 그랬다.
"부드러운 직선이 되라"고.
한 친구가 그랬다.
"세속적이고, 덜 원칙적으로 살아서 편하게 사회생활 하라"고.
올해는 세상에 많이 물드는 해로 살아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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