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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김승희의 '만파식적'

by eunic 2005. 3. 2.
만파식적(萬波息笛)

김승희


더불어 살면서도
아닌 것같이
외따로 살면서도
더불음같이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

간격을 지키면서
외롭지 않게
외롭지 않으면서
방해받지 않고,
그렇게 사는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

두 개의 대나무가 묶이어 있다
서로간에 기댐이 없기에
이음과 이음 사이엔
투명한 빈 자리가 생기지
그 빈 자리에서만
불멸의 금빛 음악이 태어난다

그 음악이 없다면
결혼이란 악천후,
영원한 원생동물들처럼
서로 돌기를 뻗쳐
자기의 근심으로 서로 목을 조르는 것

더불어 살면서도
아닌 것같이
우리 사이엔 투명한 빈 자리가 놓이고
풍금의 내부처럼 그 사이로는
바람이 흐르고
별들이 나부껴

그대여 저 신비로운 대나무 피리의
전설을 들은 적이 있는가?……
외따로 살면서도
더불음같이
죽순처럼 광명한 아이는 자라고
악보를 모르는 오선지 위로는
자비처럼 서러운 음악이 흘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