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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을 센다

혼자 먹는 밥

by eunic 2008. 12. 27.

혼자 먹는 밥

/ 박예분

마스네의 ‘타이스의 명상곡’을 틀어 놓은 점심

창문을 흔들어대는 바람소리 소란하다.

밥그릇 국그릇 따로따로 챙기는 것도 호사라

대접에 밥 한 주걱 김치찌개 한 국자 퍼 넣고

한 숟가락 비벼 떠 넣는데 울컥, 입 안에 염증 찌릿하다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들이 괴어 애를 끓다가

고열에 들뜬 입술 가까스로 벌려 다시 밥 한 숟가락

퍼 넣는데 문득 혼자 먹는 밥상들이 스쳐간다.

옆집 할머니, 위층 할아버지, 친정어머니 또

제 몸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직장에 충성하다

갑자기 무균실에 갇혀 6개월째 투병 중인 큰언니까지

이 세상 그 모르는 누가 지금 또 혼자서

서러운 밥을 무덤덤하게 먹고 있을까

이럴 때 누군가 전화해서 점심 먹었냐고 물으면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 흐르는 플롯연주에

다독이듯 꾹꾹 누른 밥숟가락 우겨 넣으며

여럿이 먹는 밥상

여럿이 우적우적 즐겁게 씹는 밥상을 생각하다가

여럿이 굶는 밥상

떼거지로 굶어 죽는 밥상

애초에 제 밥상 같은 건 받아본 적 없는 사람들

그들이 어제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 속절없던 오늘

허망하게 무너진 기대들만 풍문으로 돌고 돌아

다시 열병처럼 꾸역꾸역 모여든 기아의 밥상 위에

내일도 자본의 해는 또 둥실둥실 무심히 뜨겠지.

입 안에 단내 나는 말의 찌꺼기들을 삼킨다.

깔깔한 목구멍에 찬물 한 컵 들이켠다, 꿀꺽.

거한 점심 식사 끝.

박예분 / 아동문학가, 전주 덕진구 인후동

기사등록 : 2008-10-02 오후 08: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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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그 모르는 누가 지금 또 혼자서

서러운 밥을 무덤덤하게 먹고 있을까

요 대목에서 울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