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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을 센다

의심이 풀리는 순간 절망에 주저앉다

by eunic 2007. 10. 11.

좀 일년에 한번씩 기운이 떨어지는 날은 있긴 하였지만

감기에 걸려도 약을 먹지 않을 정도로 튼튼했던 나다.

그러나 나의 아킬레스 건이자, 내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몸의 이상신호는

항상 눈에서 왔다.

일년 내내 안구건조증과 깨끗하게 보이지 않는 시야 때문에,

나는 안과에서 가서 인공누액과 약을 받아오곤 했다.

2주 착용 아큐브 렌즈를 사서 낀게 화근이었을까.

3개주중에 하나를 개봉해 끼었는데

현선이 결혼식에 가느라 그날 하루 착용한 게

각막염에 걸려버렸다.

각막염 때문에 간 안과에서

내 눈에 대한 그동안의 의심을 풀었다.

내 눈의 시시경 사진이 보통사람들과 얼마나 다른지

시신경이 죽어 하얗게 보이는 지름이 0.6이라고 했다.

남들보다 약하게 눈이 태어난 건지, 녹내장이 진행되는 건지

시간이 많다면 시야검사를 하라고 했다.

시야검사를 했다.

시야검사 수치가 녹내장 환자가 보이는 수치가 나왔다.

의사 선생님은 위로했다.

모르고 지나갔으면 실명되는 병을

조기에 치료하니까 다행인 거라고 했다.

수술은 최후의 방법이고

영원히 밥처럼 약을 꼬박꼬박 먹어야 하는 병이라고 했다.

정말 내가 시야검사할 때 안경테때문에 불빛이 안 보인 건 아닐까.

눈물이 가려서 안 나온건 아닐까.

결과를 뒤집을 요인은 없는 걸까.

그걸 사실로 받아들이기가 싫었다.

그러나 내가 오랫동안 눈 때문에 두통을 끼고 살았던 사실이고

눈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의심을 놓지 못하고 산 건 사실이니까

이제 풀렸으니 다행인 걸까 하다가도

관리를 안하면 몇년안에 실명하고 마는 무서운 병에 내가 걸렸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었다.

그래서 10월 9일날은 씻지도 않고 10시부터 잤다.

근데 10일날은 잠을 자려고 하니 잠이 안 든다. 1시부터 3시 반까지 잠이 하나도 오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는다. 너무 두렵고 받아들이기 싫어서.

기도했다.

하나님을 미워할 일도, 미워해봤자 소용없는 일 아니냐고.

기적을 믿지 않는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절망하지만 않게 해달라고. 멀지만 않게 해달라고.

이제부터 책을 들 읽게 되더라도

아예 못 읽는 일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내가 좋아했던 신문, 책, 잡지, tv, 영화.

이 모든 내 유년과 바로 며칠 전까지 내 기쁨으로

자리잡고 있던 모든 기억과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

혹은 그 기억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다락방에서 글을 읽고 깜깜한 서점 구석에서 책을 읽던 일.

밤에 스탠드 하나 켜놓고 일기 쓰고 책 읽던 일.

깜깜한 극장에서만 영화를 보던 일.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올까.

이 글자에 대한 집착증이 심한 나한테 이 기쁨을 빼앗아갈까.

너무 억울해서 잠이 들지 않는다.

아침에도 잠을 너무 못 자서 힘들었는데,

한겨레21 읽고, 허진호, 이미연 관련 기사 읽다가 또 글에 대한 꺼지지 않는 사랑을 확인한다.

나에게 빼앗아갈 수 없는 게 글자, 글이다.

제발, 하나님. 오진이라고. 그건 기적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하나님 이럴 거라면 좋은 남자 하나 주세요.

위로라도 받고 싶어요. 난 꼭 건강한 애를 낳고 싶어요!

의심이 풀리는 순간 절망에 가라앉는 삶의 아이러니....

2주 후,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었다.

큰 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

난 nomal 판단을 받았다.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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