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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시평]수건 속에 갇힌 피의자 인권

by eunic 2005. 12. 27.
[시평]수건 속에 갇힌 피의자 인권
[한겨레]2004-05-12 02판 27면 1911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매일처럼 이어지는 사건·사고 보도 때마다 어김없이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화면이 있다. 수건이나 잠바를 머리에 푹 뒤집어쓴 피의자의 모습이 그것이다. 방송 카메라 앞에 선 이들의 범죄 혐의는 절도, 강도, 밀수, 미성년자와의 성매매 등 비교적 파렴치하거나 엽기적인 것일 때가 많다. 피의자들도 주로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다. 기자들은 사건 내용을 간략히 보도한 후 피의자에게 집요하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뻔뻔스러운’ 변명을 유도하곤 한다. 압수된 골프채, 칼 따위가 산더미처럼 쌓인 책상 뒤에서 고개를 푹 숙인 피의자들의 모습으로 보도를 마무리하는 것도 천편일률적이다. 가끔은 목소리가 잘 들리도록 경찰관이 피의자의 머리를 억지로 들어올리는 장면이 여과 없이 방송을 타기도 한다. 웃통 벗은 조직폭력배의 온 몸에 새겨진 흉측한 문신도 익숙한 장면 중의 하나다. 그리고 이런 ‘그림’이 만들어지는 장소는 대부분 경찰서 조사실이다.일상이 되어버린 이런 보도 앞에서 시청자들은 아무런 문제점도 발견하지 못한다. 습관적으로 자신을 피의자 아닌 수사기관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장면들은 모두 “형사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헌법 제27조 제4항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무죄 추정을 받는 피의자는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사생활의 비밀을 보호받을 권리를 갖는다.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체포·구속했다고 해서, 그 피의자의 신체를 마음대로 써먹을 권한까지 갖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원치 않는 방송 노출로부터 피의자를 보호할 의무를 진다. 수사기관 앞에서도 진술 거부권을 갖는 피의자가 방송 카메라 앞에서 억지로 진술할 의무가 없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경찰서에 갇혀 있는 피의자의 경우 아무리 촬영을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를 피할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당신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경찰서에 잡혀갔다고 가정해 보자.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황인데 갑자기 방송 카메라가 밀고 들어온다. 알고 보니 그 카메라는 공명심에 사로잡힌 경찰이 적극적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그 순간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황급히 수건을 얻어 쓰거나 잠바로 얼굴을 가리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청자들은 수건이나 잠바를 뒤집어 쓴 당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면서 더욱 더 당신의 유죄를 확신하게 된다. 그 과정을 겪은 사람이 입게 되는 마음의 상처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얼굴을 가렸다 해도 피의자의 동의 없이 조사실 안으로 방송 카메라를 불러들이는 행위는 여전히 권력 남용이자 심각한 인권 침해인 것이다.

만약 피의자들이 경찰서로 붙잡혀 들어가는 것을 방송기자가 야외에서 촬영하여 방영했다면 그걸 막지 못한 책임까지 수사기관에 묻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화면들은 하나 같이 경찰서 ‘안에서’ 경찰관들의 과도한 협조 또는 요청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림’을 필요로 하는 방송기자들과 업적 홍보를 노리는 수사기관의 공모 없이는 절대 이런 화면이 만들어질 수 없다. 이렇게 기자와 수사기관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순간, 피의자의 인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조사실에서 잠바를 뒤집어쓴 채 기자들의 질문에 억지로 답하는 국회의원, 장관, 미군 피의자들의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이런 보도 관행에 보이지 않는 차별까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인권 후진국의 오명을 벗으려면 수사기관은 피의자의 신체나 사생활을 언론에 함부로 넘겨주는 권력 오남용 행위부터 즉각 중단해야 한다. 이런 행위가 반복될 경우 관련자를 문책하고, 피의자들도 수사기관을 상대로 과감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나설 필요가 있다. 기자들 또한 아무 노력 없이 수사기관의 협조만으로 쉽게 취재하는 관행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며칠 전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구속된 경찰관들이 이 관행의 예외 없는 먹이가 되었듯이, 기자들이라고 해서 이런 일을 당하지 말라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김두식/한동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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