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일본 교토시에서 태어남. 작가. 도쿄경제대학 교수. 인권문제, 민족문제 등의 강좌를 맡고 있음. 주요 저서는 <소년의 눈물>(가시와서방, 돌베개사 번역 간행), <나의 서양미술 순례>(미스즈서방, 창작과 비평사 번역 출간), <프리모 레비로의 여행>(아사히신문사, 창작과 비평사 번역 출간 예정) 등.
나는 도쿄 교외의 K라는 소도시에 살고 있다. 신주쿠에서 전차로 30-40분 거리다. 이 도시에 이사온 지 5년이 지났다.
전차 역을 나서면 넓은 길이 펼쳐져 있다. 그 길이 곧게 직선으로 뻗어 있는 것은 전쟁 때 활주로로 이용할 것을 고려해 도시계획을 세웠기 때문이지만 지금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 집은 6층짜리 아파트의 4층에 있다. 남쪽 창을 열면 좁은 길 건너편에 집들이 줄지어 있다. 지붕 너머로 가로수 꼭대기가 보인다. 벚꽃이 활짝 필 때는 그 주변이 핑크빛 구름이 떠돌고 있는 듯하지만 지금은 신록으로 바뀌었다.
북쪽을 향한 서재의 창을 열면 고등학교 교사와 운동장이 보인다. 낮에는 고교생들 떠드는 소리가 요란하지만 밤에는 잠잠하다.
벌써 12시를 지났다. 이따금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얼마 전까지 멀리서 희미한 순찰차 사이렌 같은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폭주족을 쫓아가고 있었던 걸까. 그러나 그 소리도 곧 사라졌다. 따스하고 평온한 밤이다. 사람들은 잠들었을까. 나도 이제 자야겠다. 하지만 오늘 밤도 내 마음은 편치 않다.
*
몇년 전이지만, 서재 창에서 바라보이는 고등학교에 우익단체가 몰려온 적이 있다. 졸업식 때 ‘히노마루’를 게양하고 ‘기미가요’를 제창하도록 문부성과 도쿄도 교육위원회가 압력을 가하고, 이에 반대하는 교원 및 학생들과의 대립이 격렬해졌기 때문이다. 우익이 흔들어댄 깃발 중에는 ‘조선계 일본인’을 적대시하는 내용까지 있었다. ‘조선계 일본인’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들에게 그것은 ‘순수한 일본인’의 대립개념일 것이다. ‘순수한 일본인’이라면 ‘히노마루’ ‘기미가요’에 반대할 리가 없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조선’은 언제나 ‘순수하지 않은 것’, ‘일본에게 거추장스러운 것’을 상징하는 기호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우익이 그런 깃발을 흔든 사실 자체보다도 그것이 일본사회에서 전혀 문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나라에서는 사회적 대립과 위기가 깊어지면 언제나 ‘조선’이 희생양이 된다. ‘선량한 시민’들은 그것을 다른 사람 일처럼 방관한다. 그런 심성이 아직 살아 있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 뒤 경과를 보면, 보수세력이 착착 승리를 거두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히노마루’는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기다. ‘기미가요’는 천황제를 예찬하는 노래다. 그것들을 정식으로 국기·국가로 정한 법률이 1999년 이렇다 할 논의도 없이 국회를 통과해버렸다. 정부는 국회에서 “강제하진 않겠다”고 답변했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던대로 거짓말이었다. 몇년이 지난 오늘 도쿄도 전체 공립학교에서 졸업식이나 입학식 때 ‘히노마루’ ‘기미가요’ 강요는 당연한 듯 이뤄지고 있다. 저항하는 교원들도 얼마 없지만 그런 교원들은 용서없이 교장한테서 징계받고 있다.
서재에서 바라보이는 고등학교는 평온하다. 졸업식에 우익단체가 몰려오지 않게 된 것은 이미 그럴 필요가 없을 지경이 됐기 때문인 것이다.
과거의 전쟁처럼 이웃들 희생될
그러나 승객들은 평온한 나날을 보낸다
*
동서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약 15년이 지났다. 한국에서는 군사독재정권 시대의 부의 유산을 극복하는 작업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추진되고 있다. 또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보여준 바와 같이 냉전적 사고방식을 극복하고 평화를 실현하려는 끈질긴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걸어가고 있는 길은 그 반대방향이다.
일본은 헌법 제9조에서 전력을 보유하지 않고, 교전권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과거에 저지른 침략전쟁을 두번 다시 하지 않겠다는 국제적인 공약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는 여기에 집약돼 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바람 앞의 등불이다. 침략과 식민지지배의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이 헌법상의 제약을 없애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일본이야말로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난해 친구 몇명과 함께 NPO(비영리기구)를 발족하고 <전야>라는 계간지를 창간했다. <전야>를 발족하면서 실은 글을 몇줄 소개하겠다.
-지금은 밤이다. 밤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이라는 하나의 사회가 빠르게, 거침없이 전락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밤은 칠흑의 어둠이 아니라 오히려 불쾌한 밝은 빛을 띠고 있다. 고장난 텔레비전 화면 같다. 색채만 요란하고 핀트가 맞지 않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비논리적인 발언을 태연하게 되풀이하면서 경박스럽게 웃고 있다. 웃으면서 확실히 전락하고 있다. 그 끝에는 파국이 기다리고 있다. 전쟁 전야, 파국 전야다. (이하 생략)
어디에도 저항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나와 동료들이 <전야>를 시작한 것은 “설령 힘이 없더라도 스스로 하나의 저항점이 되려고 결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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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밤, 1년 중 가장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깊은 밤 서재에 혼자 있으면 어두운 바다를 표류하는 배의 선실에 앉아 있는 것 같은 기묘한 기분이 된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표류하는 배다. 이대로 가면 결국 좌초하거나 침몰할 것이다. 그러면 많은 승객이 희생당한다. 희생당하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다. 과거의 전쟁이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엄청난 이웃사람들이 희생될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승객들은 자신들을 위협하는 위기에도, 이웃사람에 끼치게 될 위해에도 전혀 무감각한 채 평온하게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나와 같은 재일 조선인들은 좋아서 이 배에 함께 탄 것이 아니지만 침몰하면 어쩔 수 없이 함께 가라앉게 될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분투해야겠다는 생각과 그런 일을 피할 수 없게 되더라도 최후까지 지켜보겠다는 심정이 지금 내게는 있다.
표류하는 배의 선실에서 쓰는 이 연재에 <심야통신>이란 이름을 붙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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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나 자신의 국적은 ‘한국’이지만 나는 민족적 귀속을 나타내는 총칭으로는 ‘조선’이라는 말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여기서 ‘재일조선인’이라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종종 오해하고 있는 ‘총련계 인사’라는 의미는 아니다. 민단계냐 총련계냐, 한국적이냐 조선적이냐의 구별을 넘은, 일본에 사는 우리 민족의 총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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