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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생각과 마음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by eunic 2005. 3. 3.

그대는 어디로 가십니까

이외수


생각과 마음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불가에서는 생각이 끊어진 자리에 도가 있다고 가르친다. 마음이 곧 부처요, 마음이 곧 법이라는 말도 있다. 성경에서도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육은 마음보다 생각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보인다. 유치원에서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마음을 사용하는 방법보다는 생각을 사용하는 방식을 더 많이 가르치고 있다. 부처를 알 수 있는 눈도 흐리게 만들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도 흐리게 만들고 있다.
세상은 혼돈 속에서 부패해 가고 있다. 하늘도 부패해 가고, 강물도 부패해 가고, 종교도 부패해 가고, 예술도 부패해 가고 있다. 심지어는 양심이라는 이름의 방부제조차도 부패해 가고 있다. 도처에서 악취를 품기고 있다. 그러나 개탄하는 사람은 많아도 개선하는 사람은 드물다.
도대체 왜 이 지경이 되어버린 것일까. 어쩌면 마음을 사용하는 사람들보다 생각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져 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자식이 부모를 시해하는 일도, 스승이 제자를 추행하는 일도, 도시가스가 폭발하는 일도, 성수대교가 붕괴하는 일도, 마음이 생활을 지배하지 않고, 생각이 생활을 지배하기 때문에 야기되는 불상사가 아닐까. 그러나 현대인들은 이제 마음과 생각을 구분하는 방식조차도 모르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것은 생각일까 마음일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것은 생각일까 마음일까. 저물녁 놀빛이 아름답다는 것은 생각일까 마음일까. 그것을 가르쳐 주려고 애쓰는 사람도 드물어져 가고 있다.
어느 학자는 흥부 같은 인간보다. 놀부 같은 인간이 더 많아져야만 사회가 발전한다는 학설을 발표한 적이 있다.
맞장구를 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진실로 그러할까.
흥부가 제비의 다리를 고쳐 주고 부자가 되었다는 놀부의 판단은 생각에 기인한다. 그러나 다리를 다친 제비가 불쌍하다는 흥부의 판단은 마음에 기인한다. 생각과 마음은 현저하게 다르다. 대상과 나를 이분화할 때 생각이 발동하고, 대상과 나를 합일시킬 때 마음이 발동한다.
놀부가 생각에 의존해서 인생을 살아가는 부류라면, 흥부는 마음에 의존해서 인생을 살아가는 부류다. 흥부가 제비의 다리를 고쳐주고 부자가 되었다는 판단은 멀쩡한 제비의 다리를 고의적으로 분지르는 결과를 초래한다. 죄책감 따위는 전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죄책감은 양심에서 기인하고, 양심은 마음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한 편의 고대소설을 통해 중시해야 할 점은 선인과 악인의 분별이 아니라 생각과 마음의 분별이다.
육조 혜능이 남해의 법성사에 이르렀을 때, 마침 인종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었다. 그 때 바람이 불어 두 명의 승려가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는데, 한 승려는 바람이 나부낀다고 주장하고 한 승려는 기가 나무낀다고 주장해서 좀처럼 논쟁이 끊일 것 같지 않았다. 그 때 혜능이 슬며시 끼어들어 바람이 나부끼는 것도 아니요 기가 나부끼는 것도 아니다. 이는 그대들 마음이 나무끼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혜능이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음을 확연히 알게 만들어 주는 법문이다.
이런 실화도 있다.
인도의 어느 성자가 다리 위에서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때 다리 아래로 배 한 척이 지나가고 있었다. 벌거벗은 노예가 땀을 뻘뻘 흘리며 노를 젖고 있는데, 주인은 배가 느리다고 생각했는지 채찍으로 노예의 등을 세차게 후려쳤다.그 광경을 보고 있던 성자의 등에 채찍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역시 마음의 실체가 어떤 것인가를 확연하게 알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일화이다.
이제 세상은 흥부 같은 사람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놀부 같은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나만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멀쩡한 제비 다리쯤 얼마든지 분질러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제비 다리 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다리조차도 서슴치 않고 분질러 버릴 수 있는 사람들도 도처에 산재해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다.
그대는 어디로 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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