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다버릴 하트
Bazzar / 김경숙
간혹 친구들끼리 모여 서로의 연애 상담을 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글쎄, 그가 너한테 먼저 전화하지 않는 건 두려워서 그런지도 몰라. 그러니까 그에게 좀더 시간을 줘. 먼저 전화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고.”남자의 헷갈리는 행동 때문에 고민하는 친구를 배려한답시고 여자들은 대체로 이런 말들을 주워 섬겨왔다. 그런데 한 남자에 의해서 그게 얼마나 한심한 헛소리인지 알게 되었다. 그 남자는 말했다. “잘 들어요. 그 남자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고 다른 남자를 찾아보도록 해요.”
그 무자비한 발언의 주인공이 누구냐 하면,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남성 스토리 컨설턴트를 맡았던 그렉 버렌트다. 똑똑하고 멋진 여자들이 이상한 관계에 질질 끌려 다니는 걸 보는 일이 이제 신물이 난 그가 드디어 진심을 말하기 시작한 거다. “그 남자가 당신한테 전화하지 않는 건, 데이트하지 않는 건, 청혼하지 않는 건, 섹스하지 않는 건 당신한테 그다지 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간단한 이야기를 두고 왜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그토록 헤매는지…. 과거의 상처가 어떻고 두려움이 어떻고 너무 바쁘고 하는 남자를 위한 온갖 변명거리를 찾아다니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거죠.”
그 남자의 잔인한 충고에 그 주변에 있던 꽤나 많은 여자들이 충격을 받고 나름대로 해방구를 찾은 모양이다. 그는 <섹스 앤 더 시티>의 책임 작가인 리즈 투실로와 함께 아예 그 내용을 책으로 묶어냈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He's just not that into you>(해냄)가 바로 그 책인데 오프라 윈프리마저 고개를 주억거리는 바람에 순식간에 1백만 부가 판매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고 말았다.
그렉 버렌트의 논리에 1백%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특히 모든 여자들이 결혼하고 싶어서 연애하는 것은 아니며, 이별한다고 해도 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우리에겐 적어도 경험이 남는다.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내적으로 성장한다) 나는 이 책을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다음과 같은 세 명의 여자에게 읽히고 싶다.
먼저 남자친구가 왜 자기랑 섹스하려고 하지 않는지 궁금해 하던 후배 J.
결국 얼마 전에 남자친구랑 헤어졌는데 그녀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선배, 제가 조용히 기다리면 언젠가 돌아오지 않을까요? 결혼한 다음에 하자며 내 순결을 아껴주던 순수한 남자였는데….”
내 대신 그렉 버렌트가 대답해 줄 것이다.
“아니요. 돌아오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당신의 순결을 책임지고 싶을 만큼 그다지 반한 게 아니었으니까요. 남자는 좋아하는 여자랑 섹스할 기회가 오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동물입니다. 아마 다음날 새벽 4시에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해도 상관하지 않을 걸요. 그러니 이제 나가서 당신을 만지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남자를 찾으세요.”
그 다음 얼마 전에 나와 타로 카드를 보러 가서
점술가에게 이렇게 묻던 후배 H.
“가정이 있는 남자인데, 그 남자가 이혼하고 저한테 올까요?
”점괘는 “돌아오지 않습니다”로 나왔지만 그렉은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저 같으면 아내를 속이고 당신에 대한 배려가 없는 남자는 돌아와도 받지 않겠습니다. 자신이 이보다 나은 대접을 받아야 된다는 걸 왜 모르시는 거죠?
마지막으로 그 남자가 왜 갑자기 연락을 두절한 것인지 알고 싶어 하는 친구 K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내 친구 K야, 니 생각처럼 그 남자가 혼수상태로 병원에 있거나 기억상실증일 가능성은 희박해. 그러니까 너의 마음과 시간을 그가 왜 떠났는지 알아내는 데 더 이상 허비하지 마. 왜냐면 넌 소중하니까. 그리고 내가 보기엔 이건 별로 나쁜 소식도 아니야. 자기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 배불뚝이가 니 인생에서 제 스스로 사라져 주었다는 점에서 어쩌면‘할렐루야’를 외쳐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퍼옴 http://blog.naver.com/yongtrip/40008441887
착각과 환상속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글이다. 나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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