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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닉의 산문

카메라에 담겨야 하는 것

by eunic 2005. 3. 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사실 나는 러브하우스, 해결 돈이 보인다의 대박집 대 쪽박집 코너, 병원 24시 등의 프로그램은 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 프로그램들 속에는 공통점이 있다)
내가 누군가를 돕는데 인색해서가 아니다.
누군가가 어렵게 살고있는 적나라한 모습과, 안타까운 사연들이 겹쳐질 때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국가의 몫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이웃들이 해결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아니면 동사무소 복지담당자의 상담기록장부에만 남아야 할 모든 상황들이 카메라에 담긴다.
성금을 모금하기 위해 더 극적이고 슬프게 과장되게 거짓되게 말하진 않겠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를 낱낱이 비춘다는게 난 싫다.
방송만 타면 부모가 없거나 가난하다는 이유로, 더럽다는 이유로 왕따 당했던 그 아이에게 따뜻한 시선이 쏟아진다.
따뜻한 손길은 도와주고 싶은 손길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지만,,,
이웃과 이웃간의 거리는 멀어지는데... 방송 한번으로 주변 이웃들이 순간적으로 친밀해지는게 아무래도 위선 같이 느껴진다.
"이제라도 너희 집 사정을 알아서 다행"이라며 "앞으로 잘 보살피고 지내겠다"는 말을 이웃들은 한결같이 건넨다.
그전엔 몰랐었다는 말.
'몰랐었다'가 변명이 될 수 있을까? 합리화시킬 수 있을까?
막연하게는 알았을 것이다.
그 아이는 부모님이 없고, 쓰러져 갈 것 같은 집에 살고, 아이가 왠지 어두웠다는 막연한 추측들을
우리는 분명 했을 것이다.
귀찮았을 것이다.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선뜻 나서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다.
방송 한번이면 귀찮았던 마음이 부지런해진다.

그냥 내가 지금 너무 힘들어 내 속사정들을 누군가에게 죄다 털어놓아야만 윤택한 아니, 지금보다 개선된 삶의 공간과, 경제적 여유를 얻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서슴없이 택할까?
방송이 나간후 그 아이는 세상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것이다.
어쩌면 문을 닫았던 내 마음을 처음으로 열어준 소중한 기회라고 나중에 고마움을 전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같이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개인이 존중받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은
갑작스레 자신의 속사정을 다 알게 된 사람들이 보내주게 될 연민어린 시선이 부담스럽고 꺼려진다.
방송에 거는 내 소망은 이렇다.
개개인의 사적인 이야기가 드러나지 않게끔 두루뭉슬하게 빈곤을 전달하면서도 각자가 처한 어려움마다 알맞은 지원방법을 가능케 해주는 방법을 연구하라는 것이다.
자존심이 너무 강해 도저히 카메라 앞에 서기 싫다고 완강하게 말하는 나같은 사람에 대비해서 말이다.

카메라 앞에서 사람들은 위선적이기도 하지만 무지 솔직해지기도 하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는 말을 하라고 하면 모든 사람들은 얼굴을 붉히고 눈물을 흘리며 "사랑한다", "죄송한다"는 말을 연발한다.
그게 낯설다. 그게 위선같다. 난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