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오자의 섬으로 가기 위한 조건은 이렇다.
조명을 싫어하는 사람,
일렉트릭 사운드가 싫은 사람,
계급사회에도전하기를 싫어하는 혹은 실패한 사람,
은둔을 원하는 사람, 가족이나 친구들에게서 멀어지고 싶은 사람,
불임 시술을 받은 사람,
커피를 마시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 혹은 커피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
필터없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
인쇄 매체를 읽지 않는 사람,
저축이 하나도 없는 사람,
본능적인 파괴 본능이 언제나 자기 자신만을 향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낙오자라고 불리는 것이 두렵지 않은 사람 이다.
낙오자의 섬은 소설가 배수아 씨가 그의 단편소설집(그 사람의 첫사랑)에 있는 <허무의 도시>에서설정한 가상의 섬이지만 실제 없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세상은 하도 꿍꿍이가 많으니까.
그때 이 소설을 읽을때가 백수시절이었다. 단 두달간의 백수시절이었지만 이력서를 쓰는 것이 하루 일과이다 보니 이 구절에 너무 동화되어 정말 낙오자의 섬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에 나는 몇개나 해당되나 체크해보기도 했다.
한두가지가 해당됐는데.... 커피에 민감해서 마시지 않는 것 하나하고 그때 기분이 하도 꿀꿀해서 권력관계, 사회적 지위 탐내지 않을테니까 미래에 대한 걱정만 덜 수 있게 해달라며 계급사회에 도전하기를 싫어하는 것이 둘이었다.
현재 두번째 것은 수정됐지만 가끔씩 기분이 다운되면 별 잡생각에 빠지는 심각한 감상주의자라 나를 지탱해주는 무언가가 필요하긴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편두통과 여타의 무서운 증상들을 밤마다 겪다보니 뇌에 무슨 이상이 있나 걱정을 많이 하고 병원에 가니 전형적인 긴장성, 스트레스성 두통이라고 진단이 나왔다.
그리고 의사는 향수, 염색약, 담배연기에 민감하니까 피하라는 말도 했다.
나는 실제 향수냄새에 민감해서뿌리지도 않고 선물받은 것은 고이 모셔놓는 편이고, 염색은태어나서 한번 했을 정도이고 담배연기는 어디서 피는지 무섭게 알아채는 편이다.
그 말을 하는의사선생님이 꼭 점쟁이같이 느껴진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며칠전 환경의 역습이라는 다큐에서 아토피환자나 석유화학물질에 민감한 인간들을 인간세상의 카나리아가 아닐까 하면서 끝을 맺던데...내가 인간세상의 카나리아 일까? 그저 까탈스럽고 골골대길 좋아하는 꾀병쟁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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