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 만들기
한국인을 넘어선 세계인 박미연씨
KBS 한민족 리포트 <양계장습격사건-박미연>
세상을 살다보면 두 부류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부러질 듯한 강고함을 담은 말은 줄곧 하지만 행동은 그에 못 미치는 사람과 유연함을 내세우지만 누구보다도 자기가 가진 신념을 옳곧게 실천하는 사람.
최근 나는 이 후자에 근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한민족 리포트 <양계장 습격사건>의 박미연씨다.
그녀는 현재 '도살에도 자비를'(COK: Compassion Over Killing) 이라는 단체를 이끄는 대표로, 처참한 환경에서 사육되고 잔인하게 도살되는 가축의 실태를 고발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그녀가 이런 운동단체에 몸담게 된 계기는 이렇다.
이민 1세대 부모에게서 태어난 박미연씨는 백인들만 다니는 학교를 다니면서, 그들 중 한사람으로부터 잊지 못할 상처를 받는다. 같은 반 학생이었던 가해자는 박미연씨에게 그들과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넌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과 함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것을 계기로 그녀는 깨닫는다.
외모가 다른 동물들이 사람들에게는 아무렇게나 죽여도 되는 존재인 것 마냥, 자신 또한 유색인종으로서 아무렇게나 취급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 이후 그녀는 30살이 넘도록 열악함을 넘어선 처참한 환경에서 사육되고 비인도적으로 죽어가는 동물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고 마음먹기로 한 것이다.
한국인에서 시작해 동양인, 유색인종에 깔려 있는 다름이 주는 차별과 폭력은 동물에 대한 학대를 멈추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그녀에게서 나는 <한민족리포트>가 드디어 한국인을 넘어선 세계인의 마인드를 가진 인물을 찾아냈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다.
육류를 안 먹는 채식주의자, 그녀는 채식주의자중에서도 우유와 달걀도 먹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채식주의자이다.
자신의 꿈은 아마 평등한 세상, 다름이 차별로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는 세상이 목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도살에도 자비를"이라는 소박한 이름으로 단체를 만들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얼마나 많은 운동단체들이 그들의 최종 목표를 단체 이름으로 정하고 있는 현실에서 볼 때 그녀가 보인 유연함은 색다른 충격으로 다가온다. 운동은 단시기에 결과를 얻어내는 단순한 싸움이 아니기에 모든 단체들이 거대담론들에 꼭 쓰이는 단어들인 자유, 정의, 민족 등을 넣어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에 비하면 말이다.
운동의 최종목표를 단체 이름으로 하지 않은 대신 운동의 첫 목표를 단체이름으로 한 것은 그녀 자신은 극단적인 채식주의자이면서 채식이 절대적인 것인 양 강요하지 않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육식의 질감과 맛을 살린 콩단백질로 만든 너겟을 들고 사람들에게 채식에 대해서 설명한다.
'끌리면 오라'라는 어느 카피처럼 고기를 먹지 않고도 살 방법에 대해서 이 세상 어느 단체도 보여주지 못한 평화로움과 유연함으로 다가선다.
한 시청자가 게시판에 써놓은 소감을 옮겨 적자면, "방송에서 인상깊었던 것 중에 하나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들의 의사만을 내세우는 일부 단체와는 다르게 현실에 맞추어 고기소비는 하되 좀더 적게 먹고 그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채식을 권유하는 모습들이 평화적이고 집단이기주의적인 일부 단체와는 많이 달라서 좋았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는 일부 단체의 그런 캠페인들은 더이상 설득력이 없다고 봅니다. 이러한 캠페인이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내렸으면 하네요"라는 말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으리라.
한 인물이 겪는 아픔과 질곡 그리고 마침내 성공이라는 포맷을 가진 인물다큐는 시간의 압축만으로 가공이 이뤄진다.
인간극장이 30분씩 5일을 해도 1시간에서 2시간이 끝나듯이, 실패와 좌절의 순간은 다큐에서 한 순간이다. 당사자는 끝을 알 수 없는 인간이기에 실패의 시간이 쓰디쓰고 길게 느껴질텐데 시간의 제약으로 빠르게 편집된 것을 보는 시청자들은 한 인물의 성공하기까지의 시간속에 어려움과 어두움을 읽어내지 못한채 지나쳐 버리게 된다.
박미연씨의 경우, 채식주의자로서의 삶을 사는데 행복한 면을 보여준 건 아니었다.
채식을 하느라 텅빈 듯한 냉장고, 딸아이의 부르튼 입술을 영양이 부족해 그런 것으로 짐작해 눈물을 애써 참아내는 박미연씨의 아버지 모습에서 짧은 순간이지만 힘든 단면을 잘 포착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민족리포트에 나오는 사람은 한민족으로서 세계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종을 이룬다.
장애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전문가가 된 사람, 노년을 오지 봉사로 정한 사람, 한국을 알리는 많은 재주꾼들.
한민족리포트가 한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키워내고,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세계로 뻗어나가 활동할 것을 고취시키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이전에 한민족리포트가 다룬 사람들과 박미연씨는 달랐다는 생각이 든다.
성공이라고 말하기엔 신문에 대서 특필된 게 전부였다.
점점 일에 매진할수록 그녀의 생활은 히터도 없이 겨울을 나아야 하는 열악한 집으로 바뀌어갔고, 하루종일 캠페인에 대한 일을 하고, 양계장에 몰래 들어가 카메라로 고통받는 동물의 실상을 담아야 하는 두렵기도 한 나날들이었다.
인간의 형상을 갖지 않은 동물들은 오로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을 깨버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시간은 기약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래서 <한민족리포트>가 한국인을 넘어선 세계인이며, 성공이라고 하기엔 이제 시작하는 박미연씨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것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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