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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정희진

[경향] 정희진의 낯선 사이 -외모주의와 사회적 개입

by eunic 2011. 10. 19.

[정희진의 낯선 사이]외모주의와 사회적 개입

정희진 여성학 강사 tobrazil@naver.com


케이블TV에서 본 미드의 한 장면. “당신, 경찰이지?” “어떻게 알았나?” “아무데서나 설치는 무법자가 둘 있지, 경찰과 미녀. 당신은 여자가 아니니까 경찰이겠지.” 실제 통용되는 불문율인지 우스갯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예쁜 여자는 줄을 안서도 된다”는 얘기는 예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성형미인’이 새치기를 한다면?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미인의 지위’는 급변했다. 성형수술과 다이어트는 미용 차원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실천해야 하는 자기 관리로 인식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미의 ‘대중화’ ‘민주화’는 미인의 지위 하락(?)과 동시에 외모제일주의를 강력한 담론으로 등극시켰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그 어떤 이데올로기가 외모주의를 당해낼 수 있을까? 북한 ‘미녀응원단’에 대한 남성들의 열광은 반세기가 넘도록 이 땅을 지배해온 반공주의, 북한에 대한 혐오와 멸시조차 가뿐히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0대, 20대 여성의 소위 ‘하의실종’ 패션 같은 특정 연령대의 명백히 성별화(性別化)된 현상조차, 인간의 보편적 욕구 표현으로 보도하는 뉴스도 등장했다(50대 남성이 ‘하의실종’ 옷차림을 했다면? 경범죄일 것이다). 내가 알기로 오천년 가부장제 역사상 여성이 인간 대표로 재현된 적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얼짱 간첩, 얼짱 강도, 얼짱 테러리스트…. 미모라면 ‘국가의 적’이든 ‘공공의 적’이든 문제되지 않는 세상이다.


이렇게 쓰긴 했지만, 사실 나는 외모주의에 대해 별다른 불만이나 비판적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건 누군가가 말리고 반대한다고 해서 멈춰질 사안이 아니다. 그 어떤 정치적 올바름이나 비판의식도 이 욕망을 이길 수 없다. 사람들의 욕망도 그렇거니와, 전지구적 몸짱 열풍에 대한 뛰어난 보고서이자 분석서인 수지 오바크의 <몸에 갇힌 사람들>(김명남 옮김)에 따르면, 다이어트 ‘증세’는 95%가 재발하기 때문에 관련 산업은 불경기가 없단다.


오히려 내가 다소 의아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흔히 외모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내면의 아름다움”이라든가 “(지나친 다이어트와 반복적 성형수술이 심각하므로) 자기 몸을 소중히 하자” 같은 언설들이다. 인간의 내면은 어디에 있나? 아름다움과 추함은 결국 몸으로 체현된다. 사람이 몸이기 때문이다. 몸이 아니라 마음? 이 논리는 착한 여자와 예쁜 여자의 이분법도 무너진 마당에, 몸과 마음을 분리하는 불가능한 관념일 뿐이다. “얼굴이 착하다”라는 말처럼, 이미 외모는 인격으로 간주되고 계급, 문화적 수준, 지역, 학력 등 개인 정보(?)는 외모를 매개로 가시화되고 있다.


외모주의에 대한 사회적 개입을 좀 다른 방향에서 시작할 순 없을까? 예를 들어, 자기 외모는 열심히 가꾸더라도 타인의 외모에 대한 평가는 조금 자제할 수도 있지 않은가. 타인의 옷차림과 몸에 대한 코멘트는 인권 침해가 되기 쉬운 부분인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마치 무슨 안부인사처럼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꼭 외모주의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의료 인력이 성형외과나 피부과에 집중되는 것은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다. ‘선진국 일본’에서도 산부인과 의사 인력 부족으로 일주일에 평균 1명의 산모가 출산사고로 사망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부작용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외모주의는 플라톤 시대부터 시작된 인간의 개념과 관련된 철학의 근본 의제였다. 서구 남성 중심의 전통적인 철학 체계에서 합리적 인간은 이성으로 몸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했다. 이에 대한 현대인의 버전은 몸을 이성의 성취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잘라내고, 다듬고, 먹는 것을 통제해 몸을 아름다움 추구라는 이성의 기획에 굴복시키는 것이다. 몸과 이성의 이분법과 이성에 의한 몸의 지배라는 인간관에 의하면, 인간은 두 종류로 구분된다. 실제 플라톤은 체액 통제 여부를 기준으로 인간의 이성 능력을 판단했다. 침, 배설물, 진물, 땀, 피, 양수, 눈물, 콧물, 가래 등 체액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노인, 유아, 임산부, 여성, 환자, 장애인)은 이성을 갖지 못한, 따라서 인간의 기준에 미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삶은 이와 정반대다. 누구나 아프고 나이 든다. 남성이어서 가능한 실천이기도 하겠지만, 1925년생인 철학자 나카무라 유지로는 이렇게 말했다. “치매에 걸려 대소변 못 가리고 침 흘리는 나의 ‘추한’ 몸을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 이것이 정상적인 인간 모습의 일부라고 알리고 싶다.” 문제는 미모지상주의라기보다 인간 몸의 다양성, 즉 현실성을 인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