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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책

가네코 후미코 / 야마다 쇼지

by eunic 2005. 4. 11.

가네코 후미코


매체명 한겨레
작성일 2003-03-29

☆ 가네코 후미코 / 야마다 쇼지 지음·정선태 옮김 /산처럼 펴냄·1만8000원가네코 후미코,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 제국의 아나키스트!
1923년 9월의 일본은 간토대지진으로 민심이 흉흉했다. 공공연하게 조선인 학살이 벌어졌다. 그 즈음 놀라운 ‘대역사건’이 보도된다. 천황과 황태자를 죽이려는 천황폭살사건! 법정에 선 대역 죄인은 바로 가네코 후미코(1903~26)라는 스무 살 일본 여자와 스물한 살 조선 남자 박열(1902~74).
가네코는 아나키스트적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박열의 아내이자, 그와 함께 일본에서 ‘불령사 동인’을 결성하는 등 공동 투쟁한 사상적 동지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성사가 불투명한 기획, 다시 말해 폭탄 입수계획 단계의 것이었으나, 법정에 선 그들은 “자신들의 무죄를 증명하기보다는 공판을 자기 사상을 당당히 밝히는 투쟁의 장으로 삼았다.” 햇수로 4년에 걸친 재판, 그리고 사형선고. 1926년 7월 후미코는 형무소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무기징역 형으로 감형받은 지 석 달 만이었다. 그의 나이 스물셋.
〈가네코 후미코〉는 전투적 아나키스트로, 근대 일본을 뿌리로부터 지탱하는 천황제를 향해 돌진했던 여성 가네코 후미코의 삶과 사상을 밀도있게 재구성해낸 역작이다. 이 책은 신문 과정에서 끊임없이 전향과 회유를 시도했던 예심판사의 말대로 “유서 깊은 일본에서 난 그”가 왜 식민지 조선인과 함께 조선 독립을 위해 싸우고, 일본 제국의 밑심인 천황제에 반기를 들었는지에 대한 집요한 답변이다. 일본인인 가네코가 목숨을 걸 만큼 마음에서부터 조선인에게 공감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서승·서준식 구명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던 일본의 역사학자인 지은이 야마다 쇼지는 그것을 ‘확대된 자아’라는 말로 요약한다.

‘나는 박열을 사랑한다. …사랑받고 있는 것은 타인이 아니다. 타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다. 즉, 그것은 자아의 확대라 할 수 있다.’(가네코의 옥중 수기) 가네코에게 식민지 조선은 확대된 자아였다.

“바로 그러했기 때문에 가네코는 황민화를 강요하는 천황제에 조선인과 함께 저항하면서 ‘자기’를 관철”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가네코의 식민지 조선 체험이 자리잡는다. 그는 청소년기이던 1912~19년 8년 동안 식민지 조선에서 살았다.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로 자신을 규정지었던 이 여성의 ‘자아’를 이룬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일본에서든 조선에서든 체제로부터 소외되어 살아야 했다는 데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가네코는 처음엔 아버지로부터, 곧이어 어머니로부터도 양육을 거부당한 채 ‘무적자’(無籍者)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책에는 조선에서 보낸 청소년기에 양녀로 들어간 집에서 받았던 학대 등 ‘비통했던’ 가네코의 어린 시절을, 읽기가 고통스러울 만큼 복기한다. 신문팔이 등 밑바닥생활을 하면서 주경야독하던 가네코가 조선인 사회주의자 등과의 만남 속에 아나키스트로 변화해 가는 과정은 그가 세계 속에서 ‘자기’를 위치짓고 직진했던 과정이기도 했다.
지은이는 수감 당시 여러 정황을 추적함으로써 가네코의 자살이 형무소쪽의 집요한 전향공작에 맞서 죽음으로 ‘자기’를 관철하고자 했던 고투의 결과였음을 보여준다. 가네코의 길은 옥중에서 전향(35년)한 뒤 45년 해방과 함께 출옥해 이후 보수적 행로를 걸었던 박열과도 달랐다.
이 책은 일본의 양심적 역사학자의 반성적 역사 읽기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말한다. “일본인이 조선을 가해한 사실을 직시하지 않는 한 일본인의 내셔널리즘은 다른 민족의 억압에 동원될 위험성이 있다. 가네코의 사상과 행동을 명확하게 하는 하나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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