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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책

총칼을 거두고 평화를 그려라/ 박홍규

by eunic 2005. 4. 4.

총칼을 거두고 평화를 그려라
박홍규 지음 /아트북스 펴냄·1만6000원

매체명 한겨레
작성일 2003-11-29

전쟁의 맹목성을 통찰한 반전그림들은 톨스토이가 말한 대로 “가장 비천하고 죄가 많은 무리들이 권력과 명예를 서로 빼앗는” 야수적 속성을 춤추는 붓질과 색채, 선들로 드러낸다. 책의 지은이 박홍규 영남대 법대 교수는 “한 시대를 이해하려면 그 시대의 미술을 텍스트 삼아야 한다”는 미술사가 에르빈 파노프스키의 명제를 반전그림의 수백년 사회사에 대한 서술로 입증해 보인다. 17세기 자크 칼로부터 고야·도미에·콜비츠·루오·그로스·리베라·피카소·샤갈을 거쳐 20세기 후반의 에로에 이르기까지 작가별로 전쟁의 참상을 담은 반전그림들이 책에는 가득하다.
지은이는 주요 반전작가들의 그림이 목적의식보다 시대상에 대한 직관적 통찰과 휴머니즘에서 비롯된 사실을 어머니 화가 콜비츠의 목판화와 고야의 전쟁화, 피카소의 〈게르니카〉 등에서 끄집어낸다. 나폴레옹 침략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한 판화와 유화로 묘사했던 스페인 천재화가 고야(1746~1828)의 그림에서 전쟁의 선-악을 둘러싼 편가르기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를 저자는 치밀하게 읽어낸다. 시민의 총살 장면을 담은 〈1808년 5월3일〉에서 희생자들은 팔을 번쩍 치켜들거나 두 손을 그러모은 채 죽임당할 뿐이다. 총을 쏘는 프랑스 군인들의 뒷모습에는 얼굴이 없다. 피해자, 가해자 모두 권력에 딸린 물건이나 기계가 된다. 지은이는 〈전쟁의 참화〉 같은 고야의 그림에 대해 “다른 목표도 없이 단지 생존을 목표로 행해지는, 개별 인간들의 희망 없는 싸움”이라는 통찰을 보인다. 반전화로 흔히 인식되는 들라크루아, 마네의 전쟁 관련 그림에 숨은 오리엔탈리즘과 제국주의적 성격을 지적한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