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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257

책임을 맡기고 싶지 않다 “책임을 맡기고 싶지 않다” 곽병찬 논설위원 “저는 참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그의 시정연설을 들으면서 떠오른 느낌은 이랬다. 아, 그는 자신을 모세나 여호수아쯤으로 생각하는구나. 온전히 신의 부름에 헌신하며, 민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 시나이의 광야를 가로질러 가나안으로 간 사람. 맞아, 그 정도는 돼야 이렇게도 말할 수 있었겠지.“국민의 고통은 저에게도 뼈저린 아픔입니다.” 그런데 고통은 누가 가져온 거지? 그가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미국의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것이긴 하지만, 사태가 터지고 계속 헛발질한 건 누구였지? 펀드를 사겠다고 한 그의 말을 믿고 펀드에 가입한 사람들일까. 아니면 위기다, 아니다, 위기다, 아니다를 반복한 그의 말에 요동쳤던 사람들일까... 2008. 12. 24.
사랑을 믿다 사랑을 잃는 것이 모든 것을 잃는 것처럼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때가 있다. 온 인류가 그런 일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손쉽게 극복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른 채 늙어버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드물게는. 상상하기도 끔찍하지만, 죽을 때까지 그런 경험만 반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삶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종종 실연의 유대감에 대해 생각한다. 세상에는 내가 떠나든 그들이 떠나든 둘 중 한쪽은 어느 별인가로 떠났으면 좋겠다 싶은, 참으로 호감이 가지 않는 인간형들이 있다. 그런데 만일 내가 우연히 그들 중 누군가가 얼마 전에 지독한 실연을 당했다는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자, 나는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같은 하늘을 이고 살기조차 싫었던 그 인간을 내 집에 데려와 술을 .. 2008. 10. 7.
텅빈 듯한 대지의 충만함 텅 빈 듯한 대지의 충만함 [매거진 Esc] :나의 도시 이야기/ 디자인하우스 진용주 편집장의 울란바토르 울란바토르는 사막이나 초원, 몽골의 모든 곳을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곳이다. 일종의 허브다. 그러니까 주체/주어로서의 ‘나’에 소유격 조사 ‘~의’가 붙은, ‘나의 도시’라니, 이 얼마나 부당한 대접일 것인가. 그 수많은 도시들을, 그 공간에 담긴 나의 시간과 기억들을,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고르고 골라, 도시 이야기 하나로 줄여낸단 말인가. 하여 고른 것은 기억이 아닌, 달콤쌉싸름한 시간의 좌표들이 아닌, 아직 당도하지 않은 시간들이 출발할 도시로 낙착되었다. 어불성설일까? 아니, 아니. 그 도시의 이름은 울란바토르이다. 이번 여름 잠시의 인연을 맺은 곳. 오문고비, 그러니까 남쪽 고비의 거대한 .. 2007. 12. 14.
밀양 바람구두 사이트에서 퍼옴누미 이창동 - 밀양 용서란 가능한가 ‘밀양’을 보고 왔다. 칸의 여인으로 등극한 전도연의 연기를 보고싶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는 이창동 감독이 이 영화에서 다룬 ‘용서’의 방식을 확인하고 싶었다. 이청준의 ‘벌레이야기’가 영화 원작이라는 이창독 감독의 인터뷰 기사도 보았지만 친일과 보안법과 광주를 거쳐온 우리사회의 특성상 용서와 단죄는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은 선택의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이창동 감독은 그러나 이런 거창한 대상이 아니라 한 여자의 고통스러운 삶을 통해 용서의 방식을 다루고 있다. 아니, 용서의 가능성을 묻고있다. 영화는 교통사고로 죽은 남편의 고향, 밀양에 신애가 어린 아들과 함께 내려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는 사람이 없는 그곳에서 신애.. 2007. 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