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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

황규백 화백의 '우아하게 사는 법'

by eunic 2005. 3. 2.

퍼온글 원본 : 경향신문 임영주 기자 블로그

<우아하게 사는 법>

최근 쓴 기사중, 드물게 개인적으로도 만족스러운 기사다.

감정만 있는 기사는 싫다. 그 사람이 아무리 착하게 살더라도, 정말 착한 것만 있으면 싫다.
지적인 것, 신선한 통찰이 없는 착함은 죽은 것 같다.

황규백 화백은 누군가의 표현대로 말도 낭만적이고 멋스럽다.
노 예술가의 깊고 넓은 인생에 대한 이해는 전율을 느끼게 하고도 남음이다.

인터뷰 하면서 황화백은 세 번, 나는 두 번 눈물이 핑 돌았다.

인터뷰를 통한 기사가 결과물로서도 괜찮은 기사가 나오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한다.

1. 인터뷰 당하는 사람이 괜찮은 사람일 것
2. 인터뷰 하러가는 사람이 준비를 많이 할 것
3. 인터뷰 당하는 사람과 하는 사람의 코드가 맞을 것.

세 개 다 필요한 조건이지만
플러스알파를 만들어 내는 것은 3번이다.

황화백의 말씀대로, 우연인 것이다.

이번 인터뷰는 3가지 조건이 다 맞아 떨어졌다.
다행스럽게도 3번도 갖춰졌지만

이전의 인터뷰에 비하면
1의 조건이 아주 좋았다.


이런 기회가 우연처럼 언제 다시 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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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귀족'의 이미지를 좋아해요. 귀족들이 몰락하길 바란다는 건 아니고(웃음). 영광스런 귀족들을 왜 좋아하는가. 그 사람들은 살 줄 알잖아요. 종 부릴 줄 알고, 문화가 뭔지 알고, 생활이 뭔지도 알고. 생활을 최고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아요. 귀족이지만 몰락했기 때문에 낭만이 더 돋보이죠. 돈이 다 떨어졌을 때조차 귀족 맛 난다는 것이, 진흙 속에서 꽃피는 것처럼 멋스럽지 않나요. 청소하지 않아 쌓인 먼지조차 보기 좋고, 정원에 낙엽이 그득 쌓여있지만 분위기 있어 보이는 집같은 이미지죠."

세계적인 판화가 황규백 화백(72)은 쓸쓸함이 배어있는 고풍스러움을 좋아한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2000년부터 유화로 방향을 바꾸었지만 그의 작품 소재는 `흔적을 남기는 우아한 것들'이다. 그는 생활도 그렇게 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소품처럼 동그란 안경, 골동품 시계 등을 안고 산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을 즐기며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아하게 사는 법에 대해 대가(大家)가 말한다.

#페인트로 만든 이탈리아 성당같은 집


서울 서초동 한 빌라에 사는 황화백은 집 내부 벽에 직접 그림을 그렸다. 벽지를 떼어내고 벽 위에 페인트로 그림을 넣었다. 고급스런 대리석벽 같은데 가까이서 보면 대리석 무늬처럼 그린 것이다.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버찌 열매와 잎이 떨어져 있어 비켜가려 했더니 그것조차 진짜같은 그림이다. 손으로 덥썩 잡고 싶은 계단 옆 손잡이도 그림이고, 그림으로 그린 창도 나있다. 창 너머로 푸른 잔디 정원이 펼쳐진다. 이 역시 원근법을 활용한 눈속임이다. 방의 문 주변은 이탈리아 성당의 화려한 기둥같은 그림으로 한껏 멋을 부렸다. 기둥 몇 개가 원근법으로 크고 작게 그려져 있어 벽은 마치 저 뒤쪽에 있는 것 같다. 거실 천장은 연푸른 하늘이다. 그 위에 흰구름이 흘러간다.

고급스런 장난으로 집은 더 넓고, 더 높아 보인다. 여기에 골동품 나무 가구, 샹젤리에, 괘종 벽시계, 두꺼운 양장본의 금박 고서(古書), 벽난로 등이 어우러져 집은 조용하게 우아하다.
"뉴욕에서 30여년을 산 후 한국에 돌아올 때 `재미가 있어야 할텐데'하고 생각했지요. 사는 집이라도 예쁘게 꾸며 놓으면 정을 쉽게 붙일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준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미국에서 아예 페인트를 사가지고 들어 왔어요. 내가 이탈리아를 가장 좋아해요. 그래서 이탈리아 옛날 성당처럼 꾸몄어요."
실제 대리석을 썼으면 큰 돈이 들었을 집을 페인트 몇 통으로 멋스럽게 바꿔 놓는 힘, 이것이 그가 말하고 싶은 우아함이다.

#우아하고 멋스럽게 사는 법


"즐겁고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은 가까운 곳에 있어요. 생활에서 멋을 부리면 되지. 그것이 가장 중요해요. 사람이 살다보면 골치아픈 일이 많잖아요. 멋을 부려서 자신을 평화롭게 놔두고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거요. 너무 악착같이만 살지 말고 생활의 멋을 스스로 발견하고 살아야 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부드러워지거든. 그렇게 사는데 꼭 돈이 많이 필요한 것은 아니요."

그런 점에서 요즘 젊은이들을 그는 좋아한다. 패션, 말하기 등에서 개성있고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기성세대보다는 훨씬 멋지게 사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란다. "우리 때는 가진 것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 앞에서 주눅들었지. 요즘 젊은이들은 안그러데. 가진 것이 없더라도 자신의 요구사항은 당당하게 말해. 그런 모습 보기 좋더라고요. 없어도 당당하고 멋지게 살 수 있는 거야."

밥과 김치 한 그룻도 멋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너저분하지 않고 깨끗하게 차려 먹기만 해도 기분은 달라진다. 좋은 음악, 좋은 글을 통해 무아지경에 빠져 잠깐이나마 생활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황화백은 집 벽에 그림을 한번 그려보라고도 말한다. 묘한 세계로 빠져들 수 있는 재밌는 길이라고 소개한다.

"벽난로가 집에 있어도 안쓰고 막아 놓는 사람들이 많지요. 하지만 불타고 있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평화가 뭔지 알게 됩니다. 밤에 추울 때 거실에 나와 불타고 있는 것을 보면 세월이 가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모든 근심과 걱정을 불에 다 태우고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거요. 불이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새삼스레 느낍니다."

#우아함으로 외로운 나를 달랜다


주변을 우아하게 만들어 놓고, 자신을 그 속에 놓는 것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라고 황화백은 말한다. 외롭고 쓸쓸한 인생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것이다. 그래서 멋스럽게 우아한 것은 고독함을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나보고 `왜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작품을 만드냐'고 하는데, 내가 본바탕에 그런 것이 있는 거라. 조용하고, 고독하고, 외롭고 쓸쓸하고. 어떤 사람은 작품도 요란하지만 나는 작품에서 자욱, 즉 흔적만 남기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사람이 앉았다가 일어난 것 같은 흔적, 바늘이 고장난 시계, 떨어져 있는 종이조각같이, 새 것이 아닌 것들을 그리지. 흔적을 남기는 것은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꿈나라같은 초현실적인 것이므로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다가가야 해요. 그러면서 위로를 받는 겁니다."

파리와 뉴욕에서 오랜 세월 작품활동을 했지만 제일 좋아하는 나라가 이탈리아인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파리에서는 가난한 사람도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지성의 맛이 배고픔도 모르게 만들지. 세련된 문화의 힘이 너무 강해서 자신이 불행해지는 것도 몰라. 현실감각이 없어지거든. 반면 뉴욕에서는 돈이 없으면 불행해져요. 뉴욕은 `버리는 문화'라. 새로운 것은 받아들이고 이전 것은 버리는 게, 사람한테도 똑같이 적용돼요. 능력있는 사람한테는 기회가 되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하면 쉽게 버림받기도 하죠. 그만큼 각박할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정 많은 사람들의 가꾸지 않은 소박한 멋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탈리아였다. 지금도 일년에 한번은 이탈리아를 찾는다. 거기서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작품의 이미지도 얻어 온다.

"세상에 우연이라는 것이 있지 않소. 작품에도 우연이 있어요. 심지어 과학자에게도 우연이 있지요. 정말 좋은 작품은, 우연처럼 어쩌다 하나 나옵니다. 내가 뭉클할 만큼 좋은 내 작품도 단 몇 개 있어요. 까만 숲 밑바닥에 기다란 우산이 놓여있는 작품이 있지. 보고 있으면 그 우산이 나같은 거요. `외로운 것은 이런 것이다, 고독한 것은 이런 것이다'라고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애. 그러다가도 고독이 외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기도 합니다. 나처럼 이 작품에서 비슷한 위로를 받는 사람이 나오면, 더 이상 혼자만의 고독은 아닌거라."

글 임영주기자 minerva@kyunghyang.com
사진 김영민기자 viola@kyunghyang.com

[커버스토리]몰락할지언정 싸구려 富는 싫다


황규백 화백은 일본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를 종교처럼 좋아한다고 말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몰락한 귀족’의 이미지를 강하게 갖고 있는 인물이다. 자신의 삶 자체가 그랬고 그 정서를 글로 풀어낸 솜씨도 뛰어났다.


1909년 태어난 다자이 오사무의 집안은 귀족으로 통했다. 그러나 전통있는 귀족이 아니라 세금을 많이 낸 사람에게 정부가 만들어 준 틀이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고리대금업으로 큰 돈을 번 자신의 집안을 부끄러워하다 도쿄대학 불문과 재학 중 좌익운동에 투신했다. 이후 좌익운동에서 이탈했지만 그 좌절감을 평생 떨치지 못했고 자신의 작품에 그림자를 남겼다.


동반자살 미수, 약물중독, 정신병원 수용 등 불안하고 위태로운 삶을 살다가 48년 애인과 함께 동반자살했다. 전쟁 후 허무주의적인 시대의식을 기록한 작품 ‘사양’(1947)으로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싸구려 부를 거부하고 방황했던 그는 멋을 부릴 줄도 알았던 사람이다. 매끈한 외모에 기다란 부츠, 창 넓은 모자 등을 갖춰 입은 사진들은 얼핏 화려한 듯하지만 피폐한 그의 정신세계를 떠올리면 오히려 슬퍼보인다.


황화백은 말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글 중에 ‘내가 화가를 했더라면 넓은 잔디밭에 큰 바위 하나를 그리겠다’는 구절이 있다. 깜짝 놀랐다. 내가 이미 그렇게 그린 그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이든 어떤 물건이든,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만든 사람과 나의 정서가 상통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애착이 더 많이 간다.”


다자이 오사무는 자전적 내용이 많이 담긴 작품을 썼는데 그만큼 그의 외로움과 방황은 읽는 사람에게 절절함을 안겨준다. 황화백이 아직도 읽을 때마다 눈물이 맺히는 작품속 장면이 있다. “엄마 대신 자신을 키워줬던 유모를 다자이 오사무가 찾아가. 죽을 때를 인지하고 마지막으로 만나러 간 것 같아. 만나러 가는 장면이 기가 막혀. 기차 타고 버스 타고 그 여자를 찾아가지. 문이 잠겨 있어. 물어물어 학교 운동장에서 그를 만나. 만나서 할 말이 없어. 순간 아무말 없이 서로 나란히 앉아만 있는 거야. 혼란스런 와중의 평화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마음이 짠해지지.” 몰락했기 때문에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다자이 오사무의 정신적·물질적 사치가 남긴 여운은 길다.


〈임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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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조선 실학자 정약용처럼



“귀족의 자제들은 모두 기상이 쇠약한 삼류들입니다. … 대체로 애쓰지 않고 얻었으니, 비록 천지가 놀랄 만한 만고에 처음 제출되는 학설이라도 모두 심상하게 여겨서 저절로 이룩된 것이거니 생각합니다. 이것이 살갗 속으로 깊이 체득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나면서부터 기름지고 맛난 음식을 물리도록 먹어서 … 목마른 말이 시내를 향해 달리는 것 같은 그런 기상이 없습니다.”

조선후기 문인이자 실학자였던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생각이다. 그는 양반이면서도 고루한 현실을 개혁하려는 실천의지가 강했다. 남인 양반 출신으로 전통적인 유학을 공부했지만 이익의 저서를 읽은 후 실학에 뜻을 두었다.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이론을 비판하고, 과학적인 태도로 학문을 연구했다.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18년간 학문에 몰두, 정치기구의 전면적 개혁과 지방행정의 쇄신, 농민의 토지 균점과 노동력에 의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의 폐기 등을 주장했다.


일상생활에서도 합리성을 최우선으로 두는 태도를 견지했다. 인간의 본능이나 이기적 욕망을 인정하는 문학작품도 여럿 남겼다.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가족들에게 보여준 태도 역시 기품있게 사는 법에 대한 것이었다. 어느날 유배지로 찾아온 큰 아들에게서 정약용은 작은 아들의 소식을 듣는다. 작은 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지로 적어 큰 아들 편에 보낸다. 편지에는 ‘세속적인 일도 우아하게 하는 법’에 대한 통찰이 녹아 있다.


“들으니 너는 닭을 기른다고. 닭을 기르는 것에도 우아하고 비속한 것, 맑고 탁한 것의 구별이 있다. 농서를 숙독하여 좋은 방법을 시험하되, 혹은 색깔별로 구분해보기도 하고 혹은 횟대를 다르게 해 보기도 하여 닭이 살지고 윤기가 흐르며 번식하는 것이 다른 집보다 낫게 하고, 또한 시로 닭의 정경을 그려내어 사물로써 사물을 풀어 보기도 하는 것, 이것이 독서한 사람의 양계다. …세속적인 일을 하면서 맑은 정취를 간직하는 것은 항상 이런 식으로 하여라.”


귀족으로서 갖고 있는 특권을 누리려하기보다,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으려 했던 삶의 태도는 지금까지도 유효한 교훈이다.


〈임영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