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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직장생활편35 직장을 다니며 내가 배운 것은 사람들은 연출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비록 머리에서 지진이 나고 고향에서 홍수가 나고 당장 애인이 이별을 일방적으로 선언할지라도 절대 히스테릭한 표정을 지으면 안 돈다. 일에 대한 긴장을 잠시라도 늦추어서도 안 된다. 물론 사람드은 사정을 들으면 이해하겠지만 나에게 득이 되는 행동을 아니다. 나는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사람들의 동정이란 화상 입은 개구리에게 보내는 시선마큼 짧고 무의미한 것이다. 그들은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내가 불성실했던 것만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화장이 완벽해야 한다. 완벽하지 못한 화장이라면 차라리 파우더만 두드리고 끝내는 것이 낫다. 완벽한 화장은 표정을 지워주고 개인적인 감정의 그늘을 최대한 없애준다. 그.. 2005. 2. 24.
그녀의 꿈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그녀의 꿈 56 나에게는 꿈이 있다. 수의학 자격증을 얻어 아프리카로 가는 꿈. 생물에 관한 공부도 계속하고 싶다. 그렇다. 나는 아직 서른 세살이다. 서른 세살밖에 안 된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은 너무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많고 듣고 싶은 음악도 많다. 아프리카의 석양도 보고 싶고 멸종하기 전에 알래스카의 고래도 보고 싶다. 이 세상 많은 것을 느끼고 싶다. 그것을 위해서 준비해야 한다.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혹시 내가 돈을 벌어 그것을 다 쓰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린피스에 기부할 것이다. 장기기증을 할 것이고 화장을 할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이 그 자체로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심플하게 진행되기를 바란다. 2005. 2. 24.
은둔하는 북의 사람 배수아의 은둔하는 북(北)의 사람 이타적이 되려는 욕망에 가득 차서 무관의 명예를 얻고자 하죠. 세속적인 이익을 애써 무시하면서 도덕적인 우월감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죠. 이 사회에서는 그런 인종이 엘리트가 되기도 합니다. 당신은 충분히 맛보았겠죠. 그러나 위대한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결국은 어떤 힘이든 간에 지배를 받게 되어있죠. 가장 가증스러운 힘은 완전하게 인간을 지배하면서 그 자신은 한없이 자유롭다고 스스로 느끼게 하는 마취력이죠. 그런 힘은 인간을 은둔하게 합니다. 정치적인 것에서 자유롭다고 상상하고 권력 구조에 순응하는 인간들을 천박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도나 어떤 개인의 악이 고통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황에 놓여 있어도 물에게 복종하는 안개처럼 피학은 스스로 가학을 찾아나선다. 2005. 2. 24.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절대로 끝나지 않을 '가난'에 대한 보고서 -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 한겨레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 2003/03/24 독일에 머무르고 있는 작가 배수아(38)씨가 연작장편소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을 내놓았다. 소설은 부암동 스키야키 식당 주변에 모여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제목에 쓰인 스키야키 식당은 등장인물들에 의해 거론되기만 할 뿐이다. 가난이라고는 해도 신경향파 식의 절대빈곤과는 다르다. 끼니를 거를 정도의 인물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의 경우에는 일종의 ‘철학’으로서 택한 자발적 가난이라 할 수 있고, 거꾸로 가난에 의한 비만의 사례가 그려지기도 한다. 소설에서 가난은 가족관계의 파탄, 힘겹지만 임금은 박한 노동, 엄청난 식탐, 사회적 지위의 급락, 존엄성의.. 2005. 2. 24.
낙오자의 섬으로 가는 조건 낙오자의 섬으로 가기 위한 조건은 이렇다. 조명을 싫어하는 사람, 일렉트릭 사운드가 싫은 사람, 계급사회에도전하기를 싫어하는 혹은 실패한 사람, 은둔을 원하는 사람, 가족이나 친구들에게서 멀어지고 싶은 사람, 불임 시술을 받은 사람, 커피를 마시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 혹은 커피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 필터없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 인쇄 매체를 읽지 않는 사람, 저축이 하나도 없는 사람, 본능적인 파괴 본능이 언제나 자기 자신만을 향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낙오자라고 불리는 것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다. 낙오자의 섬은 소설가 배수아 씨가 그의 단편소설집(그 사람의 첫사랑)에 있는 에서설정한 가상의 섬이지만 실제 없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세상은 하도 꿍꿍이가 많으니까. 그때 이 소설을 읽.. 2005. 2. 24.
은둔하는 북의 사람 [명작 명문장] 배수아 소설'은둔하는 北의 사람' 우리들 인생은 어느 순간 한꺼번에 붕괴된다. 한국인의 생을 가장 낭만적으로 그려낸 소설의 한 문장을 꼽으라면 나는 다음 문장을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겠다. ‘그렇게 우리들 인생은 어느 순간 한꺼번에 붕괴된다.’ 어느 쪽이든 극단은 낭만적이다. 우리는 그 극단을 비켜가려 하지만, 인생 자체가 극단을 닮아 있음에 어찌하겠는가. 이러한 생의 진면목을 눈치 챈 신진 소설가가 있다. 지금은 독일에 가 있는 배수아라는 여자다. 그녀는 분단 조국 이쪽 저쪽 순응주의자들로부터 유괴당한 한 지식인의 비극적 삶을단칼에 내리쳐 피가 뚝뚝 듣는 그 단면을 보여준다. 평양에 처자를 둔 북의 사람 그는, 김무사라는 가명으로 서울에서 살고 있다. 조국을 위한 이타심때문이었다. 뛰어.. 2005. 2. 2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물리시간에 학생은 어느 누구나 실험을 통해 어떤 학문적 가설이 맞는지를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한평생을 살 뿐이다. 그에게는 가정의 정당함을 실험을 통해 증명할 가능성이 없다. 그 때문에 자기 감정에 따랐던 것이 옳았는가 아니면 잘못되었는가를 그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추적하는 목적은 언제나 베일에 가려 있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에 대해 꿈꾸는 젊은 처녀는 그녀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꿈꾼다. 명예를 쫓는 젊은이는 명예가 무엇인지 모른다. 우리들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언제나 전혀 미지의 것이다. 사비나 또한 어떤 목적이 배반에 대한 그녀의 욕구 뒤에 숨어 있는가를 알지 못한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그것이 목적인가? 체코인들의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면 번번이.. 2005. 2. 2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일회성과 영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 이재룡 옮김 , 민음사우리 인생의 매순간이 무한한 횟수로 반복되어야만 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혔듯 영원성에 못박힌 꼴이다. 이런 발상은 끔찍하다.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 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상은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것을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의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직함은 진정 끔찍한 것이고, 가벼움은 아름다운 것일까? 가장 무거운 짐이 우리를 짓누르고 허리를 휘게 만들어 땅바닥에 깔아 눕힌다. 그런데 유사 이래 모든 연예시에서 여자는 남자 육체의 하중을 받기를 갈망했다... 2005. 2. 24.
한 침대에서 잘 수 있다는 의미 한 침대에서 잘 수 있다는 것은 한 침대에서 섹스를 할 수 있단 것과 다르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침대에서 잔다는 것은 섹스만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한 침대에서 밤에 같이 잠이 든다는 것은 그 사람의 코고는 소리..이불을 내젓는 습성..이가는 소리..단내나는 입등..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 외에도 그 모습마저 사랑스럽게 볼 수 있다는 뜻이다. 화장안한 맨얼굴을 예쁘게 볼 수 있다는 뜻이며 로션 안바른 얼굴을 멋있게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팔베게에 묻혀 눈을 떳을 때 아침의 당신의 모습은 볼 만 하리라. 눈꼽이 끼고, 머리는 떴으며, 침흘린 자국이 있을 것이다. 또한, 입에서는 단내가 날 것이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단내나는 입에 키스를 하고 눈꼽을 손으로 떼어 주며 .. 2005. 2. 2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테레사에게 [주인공에게 보내는 편지]''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테레사에게 [세계일보 2004-08-20 17:15] 테레사? 나는 당신이 실제하는 인물이 아니라 책 속의 한 등장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테레사, 당신은 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는, 나에게는 이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특별한 한 사람입니다. 마치 카프카가 쓴 ‘변신’의 그레고리 잠자나 루이제 린저가 쓴 ‘생의 한가운데’의 니나처럼 말입니다. 당신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낸 작가 쿤데라를 나는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쓴 모든 책들을 읽었고 그 시간은 나에게 매우 각별한 의미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또 어쩌면 그의 일부가 나라는 한 작가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을지도 모릅니다. 위대한 작가란 그런 것이지요. 내가.. 2005. 2. 24.
평등이 전제되어야 평화가 오는 걸까? 나는 행동보다 말이 먼저다. 거기에다가 쐐기를 박는 말을 해서 참 문제다. 가령이를테면, '영원'과 '절대'를 종종 쓴다. 그중에 하나가 종교문제였다. 나에게 절대로,영원히 하지 않는 게 있다면 종교라고 말해왔다. 그말이 무색하게 나는 올해부터 교회에 나가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예수 탄생일인 작년 크리스마스때부터 나갔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여전했지만 예배시간을 일주일에 한번 갖는 것도 좋을듯 했다. 또한 국악찬송가를 부르기 때문에 해금, 가야금 소리를 매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난 아침마다 황병기가 가야금으로 연주한 캐논과 유키구라모토의 캐논과 유진박의 캐논 락버전을 듣는다. 교회에 나가서 들은 설교 한토막. 목사님은 부의 95%를 인구 5%가 차지하고 있는 정의롭지 않은 인도와 개인의 권.. 2005. 2. 24.
난 내 자신이노용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부르조아가 옷을 아무렇게나 입는 것은 히피요 문화적 전위지만, 가난한 자가 그렇게 한다면 그건 단지 초라함일 뿐이다. 장선우의 벗기기나 촌스런 나쁜 영화는 키치일 수 있지만, 시장에서 장사하는 뚱뚱한 중년 아주머니의 몸빼 바지는 진짜 촌스럽다. 그것은 노동과 남루함의 상징일 뿐, 키치가 될 수 없다. 정희진 선생님의 글을 읽다가 이 대목에서내 요즘 생활의 깨달음을 얻었다. "나의 삶은 남루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남루하다는 것은,이 글을 읽기 전과 읽은 후를 경계로 나의 생활은 똑같았으나,평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배수아가 쓴 일요일 스키야키식당에 나오는'노용'이란 사람은 방이 열두 개나 되는 대저택에서 태어났으나, 일을 하지 않는 대신에 남들이 먹다 버린 음식으로 목숨을 유지하는 기행을 한다. 나.. 2005. 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