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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257

안팔리는 애들에게 고함, <팻 걸> 안팔리는 애들에게 고함,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뚱보 아나이스에게 뜨거운 자매애 느낀 “조숙했으니 조로할밖에.” 누군가 ‘늙은이’ 같다고 놀리면 받아치는 나의 대답이다. 나의 10대도 아나이스의 사춘기처럼 콤플렉스로 가득했다. 팻 걸은 아니었지만, 큐트 보이도 아니었던 관계로 나의 사춘기는 우울한 나날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다. 뚱녀 아나이스가 허공을 응시하면서 “만약 내가 꿈꿀 상대를 찾을 수 있다면 살았든 죽었든 남자든 시체든 짐승이든 상관없는데…”라고 중얼거리듯이. 신윤동욱 소년은 언감생심 꿈꿀 상대를 찾을 수 있다, 는 기대를 차마 품지 못했다. 더구나 조숙한 소년은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니까. 나도 시도도.. 2005. 3. 2.
사랑의 기념비적인 사건과 일상 영화를 보는 다른 시각 - "봄날은 간다"동아신춘영화평론가작사랑 혹은 시간의 담론 - ‘봄날은 간다’ - 이 재 현1.허진호의 영화〈봄날은 간다〉는 사랑에 관한 담론, 그 중에서도 사랑의 상처와 치유에 관한 담론이다. 그러나 '사랑'에서 '상처와 치유'에 관한 지점으로 약간만 시선을 돌리면 이 영화는 시간에 대한 담론이 된다. 영화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와 치유는 곧 기억과 망각에 다름 아니고 영화는 끊임없이 기억과 소멸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허진호의 영화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사랑이 시간으로, 시간이 사랑으로 끊임없이 이동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사랑과 시간의 이동은 명백히 구분되는 것이 아닌 서로에게 끊임없이 스며드는 삼투압 현상과 같은 것이고 영화는 단지 외형적으로만 시간을 .. 2005. 3. 2.
과거는 언제 현재로 귀환하는가? 5.영화〈봄날은 간다〉는 과거 지향적인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상우가 사는 오래된 한옥에서 보여지는 명백한 퇴락의 이미지와 은수가 사는 강릉 변두리의 아파트 단지가 보여주는 '촌스러움'-촌스러움은 곧 과거의 흔적이 아직 벗겨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은 영화의 공간을 추억으로 채색한다. 또한 상우와 은수가 함께하는 '자연의 소리'라는 프로그램은 잊혀져 가는 소리를 찾아내서 틀어주면서 과거에 묻힐 뻔한 소리들을 불러낸다. 그리고 상우와 상우의 아버지는 '뽕짝'-흘러간 노래에 능숙하다. 이처럼 영화의 곳곳에는 과거를 추억하는 요소들이 꼼지락대며 관객을 사라지는 것에 대한 향수에 젖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화의 과거 지향적인 면은 인물들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사운드 엔지니어라는 상우의 직업은 자연의 소리를 담.. 2005. 3. 2.
시간의 비균질성으로 사랑을 뽑아내다 [평론] 영화를 보는 다른 시각 - "봄날은 간다"사랑 혹은 시간의 담론 - ‘봄날은 간다’ - 이 재 현 3. 그러나〈봄날은 간다〉는 이러한 일상적인 모습들에 사랑이 녹아 있다는 전제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일상적인 순간들이 사랑의 언어로 비등하는 순간들을 잡아낸다. 허진호의 재능이자 영화〈봄날은 간다〉의 특별함은 일상이라는 혼합물 속에서 숨겨져 있는 사랑의 지극히 주관적이고 내밀한 순간들―사랑의 '에쎈스'를 뽑아내고 정제하는데서 발휘된다. 무성 영화에 가까운, 상우와 은수의 만남에서 헤어짐까지 계속되는 소리 녹음 장면들은 일상적인 몸짓이 얼마나 정밀(情密)한 사랑의 감정들을 내포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며, 상우가 은수와 헤어진 후, 쭈그리고 앉아 흔들리는 핸드폰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정적인 장면은 상실의.. 2005.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