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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할머니의 그림 '소'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 '소' 일제때 정신대로 끌려가신 할머니는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돌아오셨다. 그러나 할머니를 보는 세상의, 조국의 눈길은 할머니에게 서운하셨나보다. 소를 그린 할머니는 김순덕 할머니는'낮은 목소리'라는 변영주 감독의 다큐에서" 나는 우리가 소모냥 일만 하는 사람으로 영화에 나왔으면 좋겠어. 소처럼 다른 사람한테 나쁜 짓 안하고 거짓말 안하고 피해 안주고 평생 일만 하면서 살았다는 거 그거 보여주고 싶어" 라고 말했다. 2005. 3. 2.
기형도의 '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있거라 더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2005. 3. 2.
델리콘서트를 추억하다 나는 그리 모던락을 좋아하지 않았다. 멜로디에 숨죽인 가사가 맘에 들지 않아서라는 이유를 들긴 했지만,,,, 암튼 그것은 모던락을 한번이나 제대로 듣고 한 이야기는 아니였다. 그때 당시 델리에 미쳐 일상생활이 위태해 보이는 친구를 무슨 궤변이든 끌어모아 친구가 가자는콘서트를 저지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조금 생각을 하니 친구가 좋아하는 그 예술가를 나도 한번은 진지하게 들어주고 판단해주자는 생각에공연을 가게 됐다. 델리 콘서트의 막바지에 이르러 이라는 노래가 나오기 전 보컬 김민규 씨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전쟁, 폭력, 죽음보다도 외로움이 가장 무섭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영화가 저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그리곤 김민규 씨는 준비한 영화인 한니발에서 자신의 뇌를 썰어 후라이팬에 익혀서 먹는 장면 .. 2005. 3. 2.
문익환 목사님 10주기 늦봄 문익환 목사 서거 10주기에 맞춰 북에서 내려온 추모단과문익환 목사님의 아들인 문성근 씨 그리고 문 목사님의 부인인박용길씨.'통일의 집'이라는 자신의 집앞에서 기념사진 찰칵~ 북에서 오신 분들이 주신 선물을 받고 박용길 장로가 즐겁게 웃고 있다. 긴 시간 문익환 목사님에 관한 추억들을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박용길 장로앞에서 얼마나 그립고 보고플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간혹 재밌었던에피소드에피식 피식 뒤에서 웃고 있던 기억이.... 2005. 3. 2.
함민복의 가난은 왜 짠가? 내가 좋아하는 기자는 한겨레의 권태선 부국장, 권복기 기자, 경향신문의 김택근 부국장, 그리고 '바자'의 김경숙 기자이다. 김경숙 기자의 함민복 시인에 관한 글을 읽고 당장에 함민복 시인의 소금은 왜 짠가 ?라는 산문집을 사고 함민복이라는 사람을 너무 사랑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번에 올라온 싸이 인터뷰 기사에서도 김경숙 기자는 싸이와의 입씨름을 벌여 승자가 누구인줄은 모르겠으나 유쾌함을 선사했고 좋아하던 싸이를 여전히괜찮게 생각하는데 일조했다. 패션지에서 그녀는 화려한 화보를제압할 정도로 멋진 글을 선보인다. 내가 알게된 한 사람도 바자를 보면 김경숙 기사 먼저 본다고 한다. 그리고 이글은 김경숙 기자만큼 독특하고도 사랑스러운 함민복이라는 사람이 있어 가장 좋아하는 기사다. 함민복의 가난은 왜 짠가? 세.. 2005. 3. 2.
싸이와의 인터뷰 -김경숙 기자 싸이(PSY)와의인터뷰 싸이(PSY)보다 열 배는 더 엑시터시한 박재상과의 색기발랄한 인터뷰. ⓒBAZAAR 피처 에디터/김경숙(바자) PHOTOGRAPHED BY KIM HOSUN 보다 보다 저런 꼴통은 처음 본다 3년 전 싸이가 동대문에서 떼어온 싸구려 원단으로 만든 반짝이 민소매 셔츠를 입고 TV에 처음 나와서 “나, 완전히 새 됐어”를 부를 때만 해도, 그 개성 강한 못난이가 버클리 음대 출신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조차도, 나는 그저 패키지 희한한 오락 상품 하나 제대로 만들었네 싶었다. 그런데 어쭈, 곰이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앨범을 들어보니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고 라임을 엮는 재주가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자기 입으로 “내가 원숭이들과 뭐가 다른가 여러분이 평가해봐”라고 큰소리 치기에 .. 2005. 3. 2.
YTN 노종면 PD의 작품 설 이벤트 돌발영상 PD 노종면 [dolbal@ytn.co.kr] [저작권자(c) YTN & Digital YTN.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정치인들에게 선거를 앞둔 명절 연휴는 유독 바쁘다. 이번 설 연휴에 있었던 이른바 '정치 이벤트'를 소개한다. [설 이벤트 #1] 설 하루 전인 1월 21일 민주당 지도부가 경찰청을 방문한다. 조순형 대표가 고속도로 순찰대와 무전 교신을 하는 이벤트가 준비돼 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감사합니다. 고속도로 순찰대장 000 경장입니다." "예, 나는 민주당의 조순형 대표입니다. 아시겠어요?"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재차 묻는다. "아시고 있으세요?" "고속도로 순찰 대장 000 경창입니다.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 이.. 2005. 3. 2.
여성학자 정희진 정희진, 그녀는 한겨레에 고정으로 서평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여성학 강사이다. 나는 그녀의 글이 참 좋다. 그녀는 우리들이 일상에서 쓰는 말이 얼마나 이 사회의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있는지 설명하는 글을 쓴다. 그녀가 쓰는 글의 주제는 항상 사회적 약자를 향해 있다. 장애인, 동성애자, 노인, 그리고 여자. 2주일마다 보는 그녀의 서평의 주제가 한정되어 있다고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마다 사회적 약자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배우게 됐다. 그녀가 쓴 아래의 글은 나이 듦과 늙음에 대한 성찰도 단어에서 시작해 사회에서 한 계급으로 분류된 계층에 대해서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정희진 선생님의여성학 강의를 듣는게 소원인데 아무래도 홈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 나이 듦과 늙음 새해에 48, 29, 36살 되는.. 2005. 3. 2.
윤영관 전 외교부장관을 추억하며 오늘은 내막을 알 수 없으나 외교부장관직을 중도에 하차한 윤영관 장관이 떠올랐다. 오늘 하긴 송두율교수 재판에 참석한 것도 한몫했다. 장관이 되기전 약 1-2년전쯤 경향신문에 윤 장관이 기고한 글을 읽고 좋아하기 시작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경제전략을 점선면의 측면에서 분석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까지 짚어주는 그의 글을 보고 '참으로 괜찮은 학자 떴구나 '했다. 그래서 그가 노무현 정부의 외교부장관이 되었을때는 정말 내 일처럼 기뻐했고 정말 잘해낼 것이라고 믿었는데.... 암튼 아래의 글을 읽으며 외교부장관으로서 그가 계속했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윤영관 장관도 나의 그대들에 오를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김정일 위원장의 경제전략 윤영관 북한 경제발전을 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상이 서서히.. 2005. 3. 2.
만화가 한혜연 인터뷰 [인터뷰] 만화가 한혜연 ◆ profile69년생 3월 4일(물고기 자리라는 계산을 열심히), o형 1993년 마네킹으로 터치에서 데뷔. (가작) 신사미인곡 (터치), HEART 시리즈 (마인), 아담과 이브, ILLUSION 시리즈 (화이트) 등. ( 단행본이 없어서 지금까지의 작품 목록을 작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음. 따라서 한혜연님께 직접 사실을 확인하느라 '취조' 분위기를 조성)"미스터리물에 관심이 있어요. 미스터리물은 탄탄한 이야기구조랑 앞뒤가 딱딱 맞는 논리적 정합성도 필요하지만, 작품 전체에 흐르는 심리변화와 반전이 잘 묘사돼야 독자의 정서에 울림을 줄 수 있죠."『씨네21』 1995년 8월 15일자. "개성 만점 상상력 무한대 - 공주병에 냉담한 순정만화계 신세대 4인방"이라는 기사에 실린 .. 2005. 3. 2.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 할머니 [부고]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 할머니 별세 18세 때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시작한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 할머니가 1일 오후 인천 길병원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71세. 정 할머니는 지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으로 활동한 남편을 따라 그 해 9월 지리산에 입산한 뒤 63년 말 체포됐다. 전향을 거부해 23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85년 출소했다. 빈소는 서울 신림동 보라매병원 2005. 3. 2.
재활지원과장에 뽑힌 안규환씨 복지부 장애인 재활지원과장에 지체2급 장애인인 안규환씨가 뽑혔다. 각 신문사별 제목을 보고 내용을 읽어보니 어떠한 기사쓰기가 맞는 것일까 의문이 생긴다. 라는 조선일보 기사를 읽다가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버스를 손으로 기어 올라가면서 학교를 통학했던 이야기나 장애라는 이유로 대한민국에서 좋다는 대학을 나오고 교수님 추천까지 받은 그에게 끝내 합격통보를 해주지 않았던 취업 에피소드는 나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모든 신문에 이 기사가 나오게 된 이유는 비 장애인이 장애인 정책을 만들어 온 관행에서 벗어나 누구보다 장애인들의 고통과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장애인 정책입안자가 됐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대부분의 신문이 그 사람이 장애인 단체에서 뼈가 굵은 사람이거나 그가 생각하는 장애인 정책.. 2005. 3. 2.